
독도탐방기
-흥사단 독도수호본부 독도탐방기
「흥사단 독도수호본부(이하 흥독수 라 칭함)」가 발족한 지도 7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독도 관련 행사와 세미나 등을 통해 독도 올바로 알리기에 나름 진력해 왔다. 특히 전국 각 지부에 독도수호 지부를 두어 각 지부에서는 수호 대장 중심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흥독수(각 지부 수호대 포함)」에서 시행한 실적을 보면 독도 올바로 알리기, 독도사진 전시회, 독도교육 강사 양성 교육, 아카데미 지도교사 대상 독도교육, 독도탐방, 독도 세미나, 「독도 방파제 착공 촉구를 위한 100만 인 서명」 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흥독수」가 발족한 이래 이번이 두 번째 탐방 행사인데 매우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한 데 대해 긍지를 갖고 있다. 사실 독도탐방은 6월이 최적기(필자 생각)이나 다소 차질이 생겨 올해는 8월 19일로 날을 잡았다. 8월엔 태풍이 오는 계절이어서 불안했지만 기상청 장기 예보를 믿기로 했다.
금년의 탐방단 모집은 33명을 기준으로 했으나 서울, 대구, 대전, 제주 등지에서 43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중엔 국제법 학자인 숭실대 이을형 박사, 과학기술계 이종호 박사, 서예가 이홍재 님, 90대의 문자 전문가들과 흥사단에선 반재철 전 이사장, 남무호 전 공의회 의장, 고영철 부이사장, 대전의 김학원 단우 등이 참여하여 다양한 직업군으로 형성된 팀이 구성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탐방대원 20명은 8월 19일 01시에 흥사단 본부 앞에 집결하여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강릉 안목항으로 향했다. 평시 같으면 깊은 잠에 들 시간이지만 靈島인 독도를 간다는 설렘에 저마다 상기된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더니 어느새 한 팀 두 팀 말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모두가 깊은 취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닌가. 필자 역시 버스 기사님의 기상 신호에 잠을 깨보니 강릉 안목항에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시각이 새벽 4시가 조금 넘었고 바닷가 안개로 차창 밖으로 항구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항상 솔선하는 안성필 대장이 탐색 조장(?)이 되어 안전하게 항구 내 광장으로 들어갔으나 깜깜한 새벽의 어둠은 불 밝힐 줄 모르고 먼 바다 위 정박한 배에서 새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다였다.
한 여름 새벽의 찬 공기가 제법 몸을 움츠리게 하였으나 차에서 각자의 짐을 풀고 각자 휴식시간을 가졌다. 휴식이라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는 정도였다.
새벽 6시가 넘으면서 훤히 밝아지는 가 했더니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뿌려지는 것이 아닌가. 이 번 탐방의 총책임을 맡은 필자로선 황당하기 그지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역시 센스쟁이(?) 안성필 대장이 주섬주섬 짐을 푸는데 찰밥 세트가 아닌가. 그 새벽 싸늘한 공기를 반찬 삼아 따끈한 된장국 국물에 겉절이 김치로 먹는 진수성찬은 어느 산해진미 요리가 따라올 것인가? 다행히도 심술궂은 빗방울은 한 두 방울로 그치는가 싶더니 식사를 마치고 나니 조금씩 굵어졌다.
아침 07시 10분에 대합실 문을 열자마자 탐방대원은 삼삼오오 자리하여 출발 시간만 기다렸다. 08시가 되어서야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거대한 씨스타호가 500여 명을 태우고 서서히 물 위를 미끄러져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30분이나 됐을까? 얌전하게 출항한 씨스타호는 인천 월미도 놀이공원의 바이킹으로 돌변하여 파도타기를 하는 게 아닌가. 배 멀미하는 승객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면서 선실은 조용한 독서실 같았다. 어찌 된 일인지 안목항에서 멀어지면서 씨스타호는 순한 양이 되는 것 같았고 저동항에 도착할 즈음에는 너울도 없고 날씨도 개여 우리 일행을 기쁘게 했다.
우리 「흥사단 독도탐방」 대원 43명은 각 팀별 연고지 항구(포항, 안목항)에서 출발하여 울릉도 도동항에서 11시에 만났다. 마치 이산가족이나 만난 양 서로 얼싸안고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만남의 기쁨을 나누었다. 물론 단우가 아닌 몇 분이 계셨지만 그들 또한 인사 나누며 한 팀을 구성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울릉도에서의 첫 식사(점심)를 맛나게 먹고 육로 관광을 시작하기로 했다. 작년 필자가 독도재단에서 주관하는 방문 행사 때 수해를 입은 주민을 위한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입은 수해를 아직도 미 복구 상태라는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아직도?'라는 잠재의식이 발동했다. 알고 보니 복구 작업에 필요한 원자재가 육지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여러 사정으로 공급이 늦어져서 그랬다는 것이니 섬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었다.
울릉도의 도로 여건상 대형 버스 운행이 여의치 않아 작은 버스 두 대에 나뉘어 타고 육로 관광을 시작하였다. 울릉도는 먼, 아주 먼 옛날 화산활동 시 쏟아져 나온 쇄설물로 된 암석(?)과 토양으로 지반이 약한 편이다.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구불구불한 도로를 주행하면서 거북바위, 얼굴바위, 탕건봉, 코끼리바위며 … 숨 가쁘게 돌고 보니 어느덧 나리분지까지 다 달으게 되었다. 면적이 약 2.0㎢ 정도인 나리분지는 아주 오랜 신생대 제3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여러 암석이 분출되면서 칼데라 화구(火口)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火口原)이다.
주소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리」다. '나리리?' 재미있는 이름이다.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었지만 조선조 고종 때 개척령에 따라 개척민들이 이주해 살았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섬말나리」를 캐어 먹고살았다 하여 「나리골」이라 불렀다 하니 우연히 생긴 마을이 아닌 이야기가 있는 동네 이름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나리분지로 흘러들어온 물은 일시적으로 호수를 형성하지만 즉시 빠져 지하로 스며들어 북쪽 사면 250m 지점에서 용출(湧出)되어 추산 발전소(錐山發電所)의 원천이 된단다. 그래서 울릉도에 수력발전소가 있게 한 것이니 신기하기만 했다.
19일과 20일 양일은 저녁 식사를 한 후 7시부터는 도동항 소공원에서 상견례를 시작으로 관광객들과 함께하는 독도 강좌를 열었다. 19일엔 국제법 전문가이신 이을형 명예교수님의 독도의 국제법상 지위에 관해 들었고, 20일엔 필자(흥독수 상임대표)의「독도 방파제 착공 촉구를 위한 100만 인 서명」과 관련, 독도를 관리하는 독도에서 생산적인 독도로 개선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방파제는 필히 구축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을형 교수와 필자의 공통적 견해는 독도의 실효적 영토 주권 행사를 위해서 지속적인 국가의 통치행위가 이어져야 국제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관광객과 우리 탐방단의 야간 독도 강좌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탐방대원들이 말했다.
20일 아침 드디어 독도를 가는 날 날씨가 도와줘야 하는데 … 삼대에 걸친 공덕이 있어야 바닷길이 허락을 한다니 필자로서는 가슴 졸일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숙소의 사장님이 오늘 입도 가능합니다. 이 한마디가 의기소침했던 내 마음을 풀어줬다.
8시 사동항에서 출항하는 독도행 씨스타호를 타고 독도에 가는데 비단길이 따로 없었다. 모든 승객이 배 멀미도 없이 안전하게 독도에 상륙하였다. 우리 대원은 계획한 이홍재 서예가의 서예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로 했다. 사전에 터줏대감인 숙소 사장님을 통한 로비(?)와 총책을 맡은 필자의 선장에 대한 읍소(?) 작전으로 시도하였다. 20분 체류를 30분으로 늘리자는 의도였다. 경비대원의 제지가 있었으나 무리 없이 우리 탐방대원들과 관광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홍재 서예가의 퍼포먼스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돌섬』,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다』
이홍재 서예가는 직경이 약 20cm 되는 거대한 붓으로 20m의 흰 천에 땀과 먹물로 연출하여「흥독수」의 의지를 내뿜었다. 박수갈채의 여운을 남기고 뱃고동 소리 신호에 즉시 철수하여 배에 다시 오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붓을 잡은 서예가나 숨죽이며 지켜보는 우리들이나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독도수호 의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일 독도에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고 울릉도 둘레길을 트래킹(일부 대원은 성인봉/984m)하였다. 지난 폭우로 둘레길이 또 훼손되었단다. 저동항까지 일주는 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저녁식사와 야외 강좌를 끝내고 8시부터 독도탐방 뒤풀이를 가졌다. 울릉도의 호박 막걸리 한 잔씩을 따르며 정의돈수 시간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칠 수 있었고, 대원 저마다 독도에 온 소회를 한 마디씩 말하는데 어느 연로하신 대원이 건배를 제의하면서 이번 행사는 가장 흥사 단적인 사업 중의 하나로 좋은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고 하면서 앞으로 흥독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
21일 월요일은 둑도 탐방행사를 마치고 강릉으로 되돌아가는 날이다. 대원들은 저마다 짐을 싸들고 소공원으로 나왔다. 상별례를 하면서 참가자들 개개인의 참가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90대의 김세환 어르신은 이 혼란한 시국에 흥사단과 같은 단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면서 흥사단의 책무성을 강조하셨고, 흥사단 독도수호 본부의 이 번 독도 탐방은 성공적이며 많은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문을 하시는 여러 박사님이 계셨다. 이 행사의 총괄을 맡은 필자로선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흥독수」 상임대표인 필자는 대원으로 참가한 모든 분들께 독도수호 의지를 굳건히 하여 일본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자는 말로 작별인사를 했고, 윤회 악수를 끝으로 「흥사단 독도수호본부 독도탐방」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무사히 종료했다.
- 글 : 흥사단독도수호본부 상임대표 윤형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