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유] 21세기 교육혁명, 다시 도산 교육철학을 생각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입시를 위해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을 늘린다'는 발표를 했다. 덩달아 교육 관련 학자들과 교사 및 학부모, 활동가들은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한 대학입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양한 입장을 표명하며, 바야흐로 대한민국 시민사회는 입시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교육정책 백화쟁명 시대를 열고 있다.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과도한 입시경쟁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교육과 입시를 외재적인 관계로 생각한다. 즉 입시를 한국교육의 특성을 규정하는 핵심적 요인으로 보기보다는 교육 밖에서 교육을 왜곡하고 질식시키는 원인으로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의하면 입시경쟁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사교육비이다. 이에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입시경쟁을 완화하여 사교육비를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좀 더 나가면 과도한 입시노동에 의한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권 유린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입시경쟁에 의한 불평등의 재생산 및 사회적 양극화 문제가 제기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조기화될수록 가정으로부터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는 학생이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대학까지 포함하는) 교육체제가 과도한 경쟁과 이에 기초한 극단적인 서열화의 기능을 수행할수록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작동할 것이라는 점이 비판의 요점이다. 이러한 지적들 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하지만 입시경쟁은 단순하게 교육의 외재적인 질곡의 요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입시경쟁 교육은 한국교육의 특성을 내재적으로 규정한다. 즉 입시교육이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과 내용, 교육의 방법 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대교육체제는 1) '자본주의의 재생산'(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노동능력과 규율을 지닌 노동력-지식, 기술, 노하우, 생활습관, 태도 등-의 양성)이라는 심급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지만, 2) 근대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 즉 봉건적 특권과 압제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통한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을 지향하는 두 번째 심급에 의해 동시적이고 모순적으로 규정되며, 근대교육은 바로 이 두 가지 심급들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육체제에서는 매우 독특하게 3) '입시'(경쟁)라는 세 번째 심급이 매우 강한 규정력을 가지고 작동하는데, 입시 심급은 첫 번째 심급인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잘 조응하는 반면에, 두 번째 심급인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과는 상충하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한국 교육체제는 자본주의 재생산 기능과 입시가 결합하여 결정적인 규정력을 발휘하는 반면에 인간의 발달과 해방의 교육은 철저하게 억압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교육과정과 내용, 교육방법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지는데, 입시경쟁교육체제가 전면화된 상황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이나 전면적 발달을 통한 전인교육을 위한 교육과정과 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고민이 들어설 틈이 없다. 혹여 그런 교육과정과 내용이 마련되어도 입시의 심급을 거치는 순간 그 생명력과 본질을 잃게 된다. 또한, 대학 및 학과 서열 체계가 매우 촘촘하게 세분화되어 입시제도의 형식적 공정성 및 외형적 객관성에 대한 압력이 매우 높게 형성된다. 따라서 공정한 입시관리가 정권의 주요 정치적 현안이 되기도 한다. 공정성을 유지하고, 세분화 된 서열을 산출하는 최적의 방법으로 객관식 선다형의 문제를 출제한다. 일방적 강의식-주입식 수업방법과 단 순한 암기와 반복적 문제풀이 중심의 학습 방법을 일반화시킨다. 입시에 의해 강제되는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 단순 암기, 반복적 문제풀이로 연결되는 교수-학습 방법은 역시 근대교육의 두 번째 심급인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을 억압한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매우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교수-학습 방법은 배움의 즐거움을 박탈하고, 학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즉 먼 미래를 내다보고 크게 계획을 세워야만 그 시대에 적합한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교육에 관한 다양한 입장들은 정시확대가 공정하다, 수시 확대 또는 학생부종합전형 비율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등 주로 입시교육의 개선에 관한 갑론을박이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 회복이란 관점에서 보면, 꼬리(입시, 평가)가 몸통(교육과정, 내용)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입시교육체제를 해체하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여 21세기 '전면적인 발달을 통한 공감과 협력의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단초를 도산에게서 찾는다. 도산의 인격교육과 실용교육의 통합을 통한 '전인교육(whole person’s education)론'과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는 '평등교육(equal education)론' 및 개인적 입신양명을 위한 학습이 아니라 자율적 학습에서 나아가 공감과 협력의 동맹수련(오늘날 모둠 프로젝트 학습모 형) 및 문답식 토의토론 교수법과 본보기 교육방식 등 교육대상, 교육방법, 교육내용의 개방성에 기초하여 교실(혁명)과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 구축을 총괄하는 거시적인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는 21세기 교육혁명의 여정에 도산의 교육철학은 큰 등불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범적인 민주공화국의 시민 주체 형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체제 건설을 기약하며, 도산의 눈으로 우리 시대 교육 현실을 응시하다.
* 글 : 윤혁(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