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1907년 3월 안창호 선생이 작사했다”
흥사단, <대한민국애국가 작사자규명발표회>에서 밝혀
대한민국 애국가의 가사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7년 3월, 선천예배당에서 착상하여 작사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또한 익명으로 자신의 애국가 보급에 앞장섰던 안창호 선생이 후일 자신이 직접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현 최고령 애국지사 구익균 옹에게 직접 증언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흥사단(이사장 반재철)이 지난 2년 동안 추진해온 애국가 작사자 규명 사업이 결실을 맺은 결과이다. 이로써 결정적인 증거 부족으로 작사자 미상인 상태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애국가 작사자 규명에 대한 논쟁에 종부를 찍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흥사단은 8월 22일(수) 오후 2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애국가 작사자규명발표회>에서 이번에 새롭게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애국가의 작사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임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날 발표회는 박만규 교수(전남대, 역사교육학)의 사회로 안용환 교수(명지대, 국제한국학), 오동춘 박사(짚신문학회 회장)의 발제 및 정인교 교수(서울신학대), 정영모 민족문화연구가의 토론 등으로 진행되었다.
흥사단이 이번 발표회를 개최한 것은 안창호 선생이 진정한 애국가 작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1955년부터 정부의 결정에 의해 작자미상으로 공식화되었으며, 더욱이 친일인사 윤치호가 작사자인 것으로 오도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흥사단은 2013년 5월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위원장 오동춘)를 구성하여 안창호 작사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를 새롭게 발굴했다.
우선, 애국가 가사 원작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7년 3월 7일, (평안남도) 선천예배당에서 ‘백두산과 두만강물이’ 찬미가를 올드랭 사인 곡에 맞추어 부르는 것을 듣고 깊은 시상을 얻어 평양으로 가서 2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며 작사하여 부르도록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독립지사 윤형갑 선생(1904~1961)의 증언을 종손 윤정경 씨(76세)가 채록한 증언자료에서 확인되었다. 그동안 안창호 선생이 작사하여 윤치호의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알려진 대성학교 근무 시기(1908년 9월 이후)보다 애국가 작사 시기가 1년 반 앞선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흥사단은 2011년 3월, 윤정경 씨로부터 입수한 CD채록물의 내용에 대해 1년 4개월 동안 면밀하게 검토하였으며, 아울러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한 보강 조사를 하였다.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를 창작할 당시의 신문 기사자료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잡지에 수록된 애국가 찬송시의 원작자를 규명함에 따라 애국가 작사자가 안창호 선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안창호 선생이 ‘서서만리현(西署萬里峴)에 있는 의무균명(義務均明)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조회 때마다 국기에 경례하고 애국가를 화창(和唱)했다’고 하는 「대한매일신보」(1907년 3월 20일) 기사가 안창호 작사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안창호 선생이 ‘애국생’이라는 필명으로 1908년 2월, 「태극학보」제18호에 애국가를 찬미하는 ‘찬 애국가’ 찬송시를 발표한 것과 대성학교에서 이미 자신이 작사한 애국가 작사자의 이름을 윤치호에게 양보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한 것은 애국가가 민요처럼 대중들이 즐겨 불러서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안창호 선생 원작 애국가의 가사가 일부 변조되어 유포되거나 다른 사람이 작사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08년 이후에 출판된 것으로 보이는 윤치호 역술(譯述) ‘찬미가’와 「신한민보」(1910년 9월 21일)에 게재된 ‘국민가’이다. 이로 인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친일인사 윤치호 작사설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다.
독립지사 구익균(105세) 옹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 안창호 선생의 비서로 3년 동안 선생을 모실 때, 애국가 작사자에 대하여 질문하자 분명히 ‘맞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동아일보 기자와의 대담(2011.10.25)에서 밝혔다. 2012년 2월 6일 흥사단 단우들이 구익균 옹을 찾아갔을 때에도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 선생이라고 거듭 밝혔다.
독립운동가 윤형갑 선생과 구익균 옹의 생생한 증언으로 윤치호 작사설의 근거들은 이제 증거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윤치호작사설의 물증이었으나 이미 위작으로 판명된 윤치호 애국가 ‘가사지’와 근거 없는 영문판 자료 유포 행위도 사라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애국가 재제정에 대한 논란도 점차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애국가의 작사자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산파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도산 안창호 선생으로 규명되었기 때문이다.(끝)
▶ 문의 : 흥사단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 위원 박화만(02-743-2511, 010-8290-0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