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가 35만전 등장하여서 1만년전 신석기 혁명시대를 넘어서 마침내 청동기시대를 진입하면서 인류는 남는 생산물에 대한 전문적 관리집단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신화가 창조되었으며 선민화 계급화되었다. 이 지배관리집단이 국가의 상층부를 독점하고 대를 이어가게 되었으며 이른바 족보가 되었다. 이런 것을 국가의 출현이라고 하며 이때 규약을 선포하고 체벌을 조직화하였다. 대체적으로는 언어와 혈통을 같이하는 집단끼리 결속하였으나, 물류규모와 정복지가 확장되면서는 연방국가가 출현하고 합중국화 되는 것이며 이런 경우에는 국가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고 누구에게나 한 표의 권리를 주면서 사유화된 권력이 결코 독점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선전하고 권력을 분점하였다는 표징을 내외적으로 표방하는 데 이런 것이 ‘민주주의’ 다.
그래서 현대화된 민주주의는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든지 삼권을 분립하고 이런 것들이 잘되는 나라가 건전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선전되기도 한다.
식민지에는 삼권이 있는가? 식민지에는 주권이 없으므로 3권이 있을 수 없음이며 더욱이 상시 무장력은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사회의 발달과 인민의 의식적 발전으로 직접적 식민주의보다는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협력체로 공고화된 것이 현재이다.
그런데 그 국가는 국민으로 결속되어있고 국민을 관리하는 여러 수단으로 각급 단체를 설립 운영하도록 하는 데 사유제 국가에서는 회사를 장려하고 다양한 사회단체를 허락하며, 사회적 국가에서는 각급 집단의 노동자, 농민단체를 조직화한다. 이런 것들은 사실 국가와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 집단의 관리적인 노력들 결과이다. 이런 관리자 집단의 전문성의 내용들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고 소속인의 생활이 결과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정치이며 주권재민은 모든 국민에게 참여의 한 표를 준다는 것에 있으나 이것들에 만족할 수 없는 민의가 각급의 사회단체를 만들고 확산하면서 국가 기관과 경쟁도 하고 경합도 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사회각급단체들은 그 인간의 역사적 산물이면서 그 연장으로 보면 모두가 이익단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익단체의 정점에 있는 회사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고 이익을 배분하는 기능을 잘하는 것이 발전하는 회사가 된다. 그런데도 사유재산제 사회에서 회사는 법률과는 달리 사적 경영이다.
그렇치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모두가 국가. 사회의 공동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공동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개인성을 내세우는 미국에서도 공동체를 유별히 강조하고 기부제도를 널리 홍보하여 분배의 실천을 홍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공동체에서 ‘소외’ 되는 두려움을 알고 있으며, 이런 것은 또한 실질적으로 먹고사는 당장의 일이기도 하여 부정에 동참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관리자가 잉여산물을 관리 소유하고 있으니 여기의 이념에 동참하지 않으면 버려지게 되고 생존을 위협받는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감과 자유에 대한 뼈속부터의 지향이 있으면서 이런 자유와 민주. 형평성에 대한 제도적 보장을 위한 단체 등을 조직하고 운영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도 사실은 그 소속한 사람들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현대국가는 이념적 차이로 ‘테러와 전쟁의 내전’을 겪고 획득한 의회주의를 채택하였으며, 우리나라도 최근 ‘막가파정부’의 타락 끝에 전쟁을 유인하였으나, 성숙한 민족의 역량으로 민주주의로 의회주의로 이행되고 있는 것은 천만번 다행이다. 거리가 콩가루가 되고 지하실에서 살게 되면서 거리의 한귀퉁이에서 똥싸고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징집되는 후퇴된 역사로 돌진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자랑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지전능한 신을 방패삼아 전쟁의 불구름을 재촉하는 집단들도 있기도 한데 이런 것도 근원적으로는 그 집단의 전문적 관리자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인민을 프로파간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단체 등도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특히나 그 단체를 기반하여 먹고사는 부류들이 똘똘 뭉쳐서 이익집단화되는 경우를 종파(섹트)주의 라고 하고 이들의 특징은 은밀하면서 대체로 지역적 특징을 앞세우는데 이런 것들을 지역주의라고 하며, 이것들은 전체사회의 발전과 반대되는 경우를 만들게 되고 주권재민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양산하여 결국에는 그단체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차츰 축소하게 되는 데, 이 종파분자들은 자신의 세대에 자신만 잘먹고 잘살면 되는 것이며, 무슨 민족이네 국가네 하는 것은 프로파간다일 뿐이고 실제는 배신주의자이며 이의 동조자들이며 공동체성과는 멀리있는 집단들이니 사실상 미래를 지향하고 국익과 민익을 존중한다면 이들에 대한 처분을 두려워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농어민조합들처럼 자신의 처지를 기반으로 하는 이익집단을 비교적 선명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돌격도 하고 타협도 하는 것이지만, 우리들처럼 뜻과 이상을 찾아서 모인 신념적 이해단체들에서는 사실은 더욱 철저하게도 도덕성이 찬양되고 공명성과 이익환원적 질서가 자리잡아야 할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모든방면에서 투명성과 공개성, 절차성이 보장되고 이것을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관리자가 되고, 주권재민을 확장하는 의미로 관리자의 역할 또한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도 사회도 위와 같을 때 중심과 주변이 하나로 어우러져 발전방향으로 간다.
최근 있는 흥사단에서의 감사와 이사원의 갈등과 동행은 마치 이런 종파적 막나가는 전형으로 보여진다. 전언에 의하면 그 무슨 교육재단의 소유권을 이어받으려고 갈등하다가 이사장을 정권하고 복권하고 또 해임하자고 뒤죽박죽, 좌충우돌, 성동격서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재단을 선배단우가 기증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공적단체로 귀속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그 운영의 민주성을 제도화 할 것인데, 마치 소수의 관리자만 영속적으로 운영권을 거머쥐려고 하다가 벌어지는 각축전이란 것이다. 머리가 되자고 흥사단 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공적이익을 앞세우자고 ‘대공주의’를 앞세우는 도덕사회단체가 사익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고 있는 현실이고 사회적 꼬리가 되는 아니 잘라버려야할 꼬리인 종파가 될 위기에 있다. ‘하인리히 법칙’에 의거하면 투명, 교육이니 그 전조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 해산되고, 그것도 사실은 사익을 앞세운 일부가 키운 결과이기도 한데, 더 이상의 사적발달은 중지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 모두가 초심으로 민족공동체의 이익을 향해 사익을 헌신코자 했던 초심으로 발심하여 협동하여 용기있게 ‘일보후퇴, 이보전진’해야 할 것이다. 내부총질한 종파의 근원에 대해서는 수술하여야 한다.
25.0706 공의원 김교근(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