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산악회 창립 100주년
- 평화와 통일로 해파랑길 출정식 -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에 따르면,‘동쪽에서 보면 여섯,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된다’는 오륙도(五六島)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오륙도는 명승 제24호로 지정된 만큼 주변의 경관이 장쾌하다.
그 오륙도를 바라보는 해맞이 공원은 언덕에 고층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부산 용호동 주민의 쉼터로는 딱 들어맞는 곳이다. 2022년 3월 12일 오전 11시 흥사단산악회원 40여명이 모여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해파랑길을 걷는 출정식을 가졌다. 오늘을 시작으로 흥사단 산악회가 창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2027년까지 5년 동안 장장 770km 되는 해파랑길을 걸으며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취지로 개최되었다. 출정식을 기획한 흥사단 브레인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번뜩인다. 향후 5년 중장기를 내다보고 사업화한다는 안목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제주흥사단에서는 출정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산악대장 김선희, 공의회의장 고영철, 부지부장 임영훈, 조직국장 성영희로 구성된 당찬 참가팀을 꾸려 3월 12일 오전 8시30분 제주→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출정식이 제주 한라산에서 시작되면 더욱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걷는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부산 해파랑길이 적당하리라는 긍정이 통한다. 혹여나 기회가 된다면 강원도 고성까지 돌파하고 한라산에서 산악회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할 것을 제안한다. 한라산에서 개최된다는 염원을 비행기에 함께 싣고 40여 분을 날았다. 부산 김해공항에서는 이복희 단우가 바쁜 시간을 쪼개 우리 일행을 맞았다. 제주 촌사람들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동안 출정식 장소인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도착하였다. 언덕에는 고층아파트가 오륙도를 향해 곧게 서 있고 오륙도 6개 섬 사이를 힘찬 파도가 꿈틀거리며 틈을 비집고 있다. 우리와 함께 출정식을 하려는 몸부림인 듯했다. 곳곳에 식을 준비하는 단우가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저 단우라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고 정이 도톰했다.
오늘 걸어야 하는 길은 17.8km, 결코 짧지 않는 길이다. 준비 운동이 필수이므로 전문강사가 오래된 몸을 풀어 주었다. 양팔을 머리 위로 쭉 뻗고 발꿈치를 들어 하늘을 쿡쿡 찌르는 동작을 반복하는 동작을 시작하였다.
양팔로 옆 가슴을 팍팍 치는 동작에서는 묵혀있던 폐부가 확 터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해맞이 동산을 지나려면 산길이기에 울퉁불퉁한 돌이 박혀있다. 발을 딛는 곳을 잘 정해야 하고 발바닥에 퍼져있는 균형을 잡는 근육을 깨워야 하므로 왼발을 딛고 오른발을 들고 90도를 회전시키는 동작은 가히 절정이었다. 여기저기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어~ 어~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하자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험한 길을 걷는 동안 돌부리에 걸리거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운동을 하였다. 건강도 증진하고 사고도 예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았다. 이어서 출정식이 시작되었다.
박정애 회장님의 인사말이 힘차게 울렸다. 흥사단 단우가 화합하는 길이 시작되고 평화와 통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마음에 품고, 해파랑길을 시작으로 전국의 단우들이 동참하기를 바란다는 당찬 포부를 피력하였다. 발그스레한 얼굴에 참석한 단우들 모두 빙그레 웃는 얼굴로 화답하였다.
반재철 고문님의 격려 말씀이 감동이었다. 92세 청년 신상은 단우님도 참석하여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770km를 걷는 동안 평화와 통일로 가는 마음을 굳게 가지자는 격려를 해주셨다. YKA 산악회 고문 엄홍길 대장이 자필 축하 메세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귀를 의심했다. 반재철 고문님이 대독한 후 엄홍길 고문님의 자필 글씨를 보고서야 비로소 믿게 되었다. 흥사단 산악회 100주년을 축하하고 오늘 시작된 출정이 2027년까지 내내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으로 믿는다는 메시지를 커다란 선물로 주셨다.
박남식 원로회장님은 후원금을 듬뿍 주셨고, 남정철 고문님은 전국 100대 명산을 완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번 해파랑길 50코스도 분명히 완주할 것으로 믿는다는 기운을 주셨다.
흥사단 박만규 이사장님은 “대한강산은 조각마다 금이다.”라고 하셨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오륙도가 보이는 이곳에 오니 정말로 아름다운 곳임을 실감하고 있으며,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금을 꿴다는 생각으로 임해줄 것을 당부하는 동시에 YKA 사업으로 채택한 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셨다. 등산이나 걷기나 결코 혼자 가기보다는 삼삼오오 모여서 가야 편안한 마음에 안심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2027년 기념식에는 김태석 원로를 비롯하여 오늘 함께 하지 못한 분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면서 말씀을 마무리하였다.
흥사단 박동범 부산지부장은 환영사에서 평화로 통일로 가는 길을 전국 전국에 계신 단우님께 나누어 드린다며 부산에서 시작하는 의미를 새기고 함께 하였다. 출정식 막바지에는 김태석 고문님이 대한민국! 만세!, 남북통일! 만세!, 흥사단! 만세! 만세삼창으로 마무리하고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11시35분 출발하였다.
출정대 머리에는 문화유산해설사가 안내와 해설을 동시에 맡았다. 해파랑길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걷고자 해설사 발뒤꿈치를 바라보면서 제1코스인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미포까지 17.8km, 6시간의 장정을 시작하였다. 해파랑길은 해변길, 숲길, 마을길을 잇는 장거리 걷기 여행길로 전체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공모를 통해 해파랑길 명칭이 선정되었는데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합하여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의미가 잘 어우러져 있다. 더 바랄 것이 있다면 고성 통일전망대를 거쳐 휴전선 155마일과 서해 해안선과 남해안을 거쳐 부산 출발지까지 연결하는 7,000리 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길이 실현되는 그날에 7,000만 한민족이 통일로 하나 되어 걷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출정대 말머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기운찬 박자에 맞추어 오르막을 맞았다. 시작부터 어려움을 맞는다.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숲은 오래되지 않았다. 수고직경이 크지 않고 줄기가 아직은 가늘다. 오래지 않은 숲이지만 줄 수 있는 것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연을 만들어준다. 나의 사연을 알려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차리도록 한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타인의 사연을 알고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숲길을 걷는다는 일은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일이다. 흥사단의 희노애락을 숲에 던져주면, 숲은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숲은 꺼질 듯이 이어지고 이어져 솔나무를 보여주었다가 바람을 맞이하기도 하고 또 심심하면 파도 소리로 우리를 깨우기도 한다. 길을 따라 들며 날며 무리와 마주치기도 하고 새로운 공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숲은 많은 행복을 전할 것이다.
숲이 어떤 행복을 줄까 생각하는 순간 해설사가 먼저 소식을 전했다. 구릉을 올라 허리 부분에 이르렀을 때 일제강점기 당시에 동굴 포진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잡초가 무성하여 당시의 상황을 짐작만 할 뿐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믿는 구석은 해설사의 입이고 보면 어디를 가던 사연이 없는 곳은 없다. 또 다른 사연이 어디에 있을지 발걸음을 위로 옮긴다. 더욱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서 있는 고층아파트를 짓기 위하여 한센병 환자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고 하였다. 그 당시 1억원 이주금을 주고 10,000여 명을 달랬다고 한다. 한센병자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지는 뒷전이었다. 해맞이 공원에서 해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겠다는 의지가 정말로 비굴해 보였다. 가성비만 고려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가심비는 안중에도 없었던 처사다. 평화와 통일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같이 가야지 암. 누구를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앞으로는 동굴 포진지를 복원하여 민간에게 개방한다고 한다. 터진 바다로 침략군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지세이기 때문에 포진지가 들어설 수 있는 전략지인 셈이다. 이곳의 지명도 군사적인 냄새가 풍기는 용호동이다. 평화를 위하여 통일을 위해서만 사용되기를 기원한다.
동굴 포진지에서의 우울한 기운을 이제는 떨친다. 많은 단우가 참석하여 출정대가 일렬로 늘어선다. 구불구불한 길을 선두에서 말미를 보자니 장관을 이룬다. 삼각 깃발을 배낭에 꼽고, 사각 출정기는 모자와 가슴에 매달고 늠름하게 걷는 기운이 흥사단 100년, 산악회 100년을 넘어서서 200년 고지를 향하여 달음질친다. 오늘의 행렬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흥사단의 정신이 가슴에 요동칠 것이다. 그 모습을 본다.
장산봉을 왼쪽에 오른쪽에는 파란 바다를 두고 걷는다. 산과 바다 사이에 서 있는 상황이 평화와 통일 가운데에 놓여있는 우리의 실정과 흡사하다. 오른쪽에 있는 바다에 떨어지지 않도록 왼쪽과 평행을 이루면서 딱 한 사람이 갈 수 있는 좁은 길에서 균형을 잡는다. 걸음을 옮길 적마다 바닥에서는 풀풀 먼지가 피어오르고, 피어오른 먼지는 바람이 바다로 실어 나른다. 조금 남은 먼지 조각은 신발 위에 남아 노랗게 흔적으로 변한다. 조그마한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단우 서로 서먹한 얼굴로 출발했다.
고영철 의장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제주에서 4명이 출정대를 구성하여 왔을 정도라면 전국에서는 400명이 모여야 정상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이 즉각 왔다. 출발하고 10여 분이 지나자 이제는 서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밀양에서 왔슴더”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소식을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커다랗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배철수가 탈춤을 추면서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은 철없던 시절에 들었노라”라는 노래를 불렀듯이 철없이 어색한 분위기는 이미 하늘로 올라가고 없었다.
송충바위에 이르러서 해설사가 “송충이 닮았다고 바위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송충이가 겁을 먹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다. 제주에 있는 외돌개와 거의 비슷한 장면이다. 안내판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곳이다. 송충바위는 허리를 들어내고 나머지는 바다에 잠긴 상태, 세상을 보려고 나왔지만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철썩이는 물결을 맞고 있다.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는데, 무시로 변하는 물결을 열심히 맞고 있다. 변화를 무변화로 맞이하는 송충바위를 보면서 흥사단에 입단하여 지금까지 변한 것이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이 어떤지 곰곰 삭이게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무참히 잠기고 말아 버린 거짓, 지금까지도 허리 위로 나오기를 아직도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로만 알았다. 높은 소리가 낮은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반복되어 들린다. 누가 판소리 연습을 하는가 궁금증을 안고 소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농바위 안내판이 있는 쉼터에서 젊은 사람이 후렴구를 외치는 소리였다. “아이스께~끼” 한 번 소리치고, 조금 쉬었다가 “오늘은 아이스커피도 있쓰아” 하고 구성진 목소리를 토했다. 멀리서 들으니 높고 고왔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면서 목소리를 들으니 아이스께끼를 굳이 사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스레 음성을 들려주었다. 그 사람 참 자리도 잘 정했다.
농(籠) 바위는 제주 성산포 해녀들이 부산 남천동 해안가에 자리를 틀어 물질하며 서로 연락하는 장소로 농(籠, 버들채나 싸리 따위로 만든 가구로 옷이나 귀중품을 넣어 보관하였다)을 닮은 바위를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제주해녀가 제주 해역에서 물질을 했으나 출륙금지령(1629년 인조 7년 8월 13일 제주도민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으로 1823년까지 이어졌다)이 풀리면서 부산과 남해안은 물론이고 일제강점기에는 블라디보스톡 해역까지 가서 물속을 들락거렸다. 광복 후에도 제주 해녀가 울릉도와 독도까지 가서 물질(해녀작업)을 했고 심지어 최근에는 독도 이장의 부인이 제주 한림 출신이다. 이렇듯 제주 해녀의 아픈 사연이 깃든 농바위를 다시 보았다. 물질하여 걷어 올린 소라나 전복이 담긴 망사리를 머리에 지고 물에서 막 올라오는 모습 같았다.
우리는 지금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 무료할 시간이 되면 해설사가 한마디 보탠다. 산책로는 해발 240미터의 장산을 끼고 도는 둘레길을 이용하여 산책로를 개설하였으며 해파랑길로 연결한 것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부대가 해안 경비를 담당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였다가 민간에게 개방하였기에 아직도 철책이라던지 초소와 같은 잔재물이 남아 있는 곳이 여러 곳에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이기대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두 명의 기녀가 왜장을 안고서 바닷물로 투신하였다는 곳이라고 하였다. 투신한 곳은 장바위라는데 평평하고 널찍한 화강암 바위이다.
이기대 해변산책로는 장산 둘레에 형성되어 있고, 장산에는 화산폭발로 생겨난 화산쇄설물이 해변 곳곳에 남아 있어 출정대가 걷고 있는 동안 미려한 조망을 주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말에 해운대 쪽 장산과 영도의 봉래산 지역에서 대규모 화산 분출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커다란 바윗덩이 옆면에 크고 작은 바윗돌이 박히거나 입자가 작은 연한 잿빛 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화산 분출 때 날아온 쇄설물이 차례로 쌓였는데, 먼저 굵직한 각력(4mm 이상의 각이 진 돌, 모자갈)들이 날아와 쌓였고 이어 고운 입자의 화산재가 내려앉아 굳은 것이다. 화산각력암층과 화산재가 굳은 잿빛 층(응회암층)이 세 단계나 겹쳐있다. 화산 폭발이 최소 3차례 이상 진행됐다는 증거다. 적어도 8,0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화산활동의 결과를 발밑에 두고 있기에 화산활동이 어우러져 각력암을 두었다면, 출정대원 모두 어울림이 필요하였다.
출발 당시에는 한 팀으로 장관을 이루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좁은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는 법이라 1팀과 2팀으로 나누어졌다. 어떤 팀이 강해서가 아니라 지정학적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분리되었다. 분리된 팀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인지 어울마당 표지가 보였다. 해설사가 자연스럽게 출정대를 인도한다. 어울마당은 너럭바위나 자연적인 장소가 아니라 공연할 수 있도록 계단이 조성된 곳이다. 풍치가 참으로 좋다. 멀리 센텀시티에 있는 해운대의 상징 마천루가 우뚝 솟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인지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해운대를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해운대 시나리오를 보면 희미가 “야~ 경치죽이네, 여기 이름이 뭐라구요?” 물었다. 형식이 “이기대요!” 답변하였다. 희미가 되묻기를 “이기대? 사람이름이에요? 이름 특이하네.” 답답하다면서 “둘 이!, 기생 기! 기생이 두 명!” 형식이 조근조근 말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조근조근 설명하는 형식이의 행동 또한 어울림의 한 방편이다.
출정대 1팀이 먼저 도착하여 이기대가 유래된 장소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보는 동안 2팀이 합류하여 어울렸다. 밀양 출정팀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관심도 대단하였다. 어울린 방법은 8대에 관한 설명이었다. 부산에는 해안8대와 내륙8대가 있다. 문자로 보내준다고도 하면서, ①동백섬의 해운대 ②영도의 태종대 ③다대포의 몰운대 ④용당동의 신선대 ⑤용호동의 이기대 ⑥가덕도의 연대 ⑦기장의 시랑대 ⑧수영의 점이대를 해안8대라고 적어 주었다. 그리고 ①범일동의 자성대 ②금정산의 의상대 ③오륜동의 오륜대 ④회동동의 동대 ⑤달음산의 장군대 ⑥동래성의 동장대 ⑦동래읍의 학소대 ⑧덕포동의 강선대를 내륙8대라고 하며 부산시민이 아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모습이 아주 부러웠다. 모두 외우고 있기까지 했다.
15,000원에 해파랑길을 수첩을 사서 인증도장을 찍는 단우도 있었다. 팀과 팀이 어울리면서 사진도 찍고 흥사단 활동의 어려움이나 즐거움을 나누었다. 초콜릿 사탕을 전부 나누어 주면서 피곤함을 어루만지는 단우의 얼굴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에 햇빛이 올랐다. 이내 찬란한 은빛으로 퍼져 어울마당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어울림을 축하하는 빛의 공연이었다. 콩물에 간수를 떨구면 순두부가 몽글몽글 뭉치듯 단우들이 어우러지는 시간을 갖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을 재촉했다.
바닷가에 파도를 이기고 돌은 불규칙하고 불안정하게 자리를 하고 있기에 딛고 걷을 때에는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준비 운동을 할 때에 발바닥에 균형을 잡는 근육을 단련시켰기에 총총 걸음으로 딛고 바위밭을 나왔다. 시간이 부족한지 안내자가 지름길을 안내한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름길에는 아예 난간도 없다. 질러 갈수 있다면 가야 한다고 밀양팀이 외친다. 이제는 광안대교가 보인다.
선두를 바짝 따라오는 일행이 있었다. 김가겸 단우(kmj1000@naver.com)가 힘찬 목소리로 호소한다. 대한민국인이면 총을 잘 다루는 국방력이 강한 민족이라고 하며 옆으로 다가선다.“군에서 전투력 측정 시 20발을 몽땅 명중시킨 사수였고 나중에는 M60(일명, 람보 총) 사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만 오늘 해파랑길 17.8km 거리를 약 6시간에 걸쳐 걷는 행군은 30년 만입니다.”라면서 은근히 합류하였다. 정말로 그랬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볼거리도 두리번거렸다. 구리광산이 있었던 곳이 나타났다. ㈜대한광업이라는 이름으로 순도 99.9%의 항동을 채굴했는데 1~5호 갱도의 흔적만이 아스라할 뿐이다.
해안을 따라 걸으면 동굴이 한 번은 있을 듯 했는데 역시 나타났다. 해식동굴에 동굴체험 표지가 있다.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 일행도 있고 꼭 체험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단우도 있다. 구름다리가 반긴다. 걷는 동안 다양한 길을 맞았는데 구름다리를 통과하는 기분은 특별했다. 세 개의 구름다리를 차례로 건넌다. 다리에서 출렁 거리는 물결을 타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를 지나며 출정대가 걷고 있는 단 하나의 염원, 평화와 통일을 연결하는 궁극의 희망이 이기대 구름다리로 맺어 질 것 같았다. 좌측으로 높다란 절벽이, 우측으로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다가오는 파도가 구름다리 밑에서 만난다. 절벽과 파도가 화합하여 만나는 장면을 기억하려 몸은 여전히 출렁거렸다.
11시35분에 출발하여 2시간이 지났다. 1시30분에 섶자리가 유명한 식당에 점심을 예약했다고 한다. 장소는 동생말에 있다. 동생말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어디에도 설명문이 없다. 구리광산이 인근에 있었기에 구리(銅)가 나온다(生)고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과 동산의 끝이라고 하여 동생말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겠다. 의미는 둘째 치고 우선 시장기를 채워야 했다. 회덮밥에 매운탕이 순삭되었다. 박만규 이사장님이 거금을 협찬해 주시고 바쁜 일정관계로 함께 완주를 못하게 되었다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2시45분에 출발하였다. 이제 부터는 탄탄대로를 걷는 코스만 남았기에 속도를 내서 가자고 한다.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순간의 틈새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박정애 회장이 흥사단에서 활동한 경험과 자원봉사연합회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광안해변로가 광장처럼 넓다. 체육기구에서 운동하는 사람,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 뛰는 사람, 마임하는 사람, 십인십색이 모여 세상을 구성한다. 출정대의 인생 역정도 다양하다. 네 사람이 옆에 늘어서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산과 구릉에 피어나는 억새와 호수와 늪지대에서 흐늘거리는 갈대이야기를 누군가 시작했다. 가을에 영남알프스 정상에 가면 억새 물결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제주에는 굳이 높은 곳에 가지 않더라도 억새의 환상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석양이 지는 무렵 하얗게 피어난 억새가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면 가히 몽환적이다. 천상에 은비늘이 출렁이는 감흥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소감을 주고받았다. 말문이 트였는지 제주에서 5박6일을 체류하면서 5일 내내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유머로 도심을 통과하는 무료함을 달랬다.
광안해변로가 인도와 자전거길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단우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려면 옆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야 한다. 자전거길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여지없이 자전거 무리가 신호를 주면서, 오른쪽으로 걸으세요!! 곧바로 움찔하면서 비켜서야 했다. 물론 대화도 끊어지고 대화상대도 바뀐다. 그 덕분인지 다른 단우 옆에 다가섰다. 진중한 대화가 오갔다. 인생을 빠르게만 가려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약화되었다고 한다. 마음과 같이 가는 보폭이 중요하다면서 재촉하는 안내자를 흘깃 보기도 하였다.
섶자리다리를 건너고 나니 복잡계로 들어선다. 섶은 작은 나무나 잎을 뜻한다. 마을이 해안가 절벽이 있는 곳에 위치하므로 섶은 바다의 잎 즉 해조류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근에 잘피가 많아 그렇게 불린 듯싶다. 섶자리 마을은 1964년 동국제강이 갯벌을 매립하여 들어서면서 주로 장어 회나 구이집이 성황을 이루었다. 1998년 동국제강이 공장 부지를 LG 메트로시티 부지로 매각하여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바다가 매립되면서 자연 마을의 옛 모습은 사라져 섶자리길 도로명만 옛터를 알려 줄 뿐이다.
4시가 넘었다. 점심 이후 1시간 이상을 걸었다. 그렇게 멀게 만 보이던 여정길이 가까이 왔다. 그래서인지“부산에가면”홍보 아치가 정겹게 다가오고 부경대학교 해양 탐사 선박이 커다랗게 보인다. 메가마트 간판 아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본다. 광안리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기념사진에 증거를 남겼다. 신호등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커피 한 잔으로 간식을 삼기도 했다. 해수욕장 모래밭에서는 풍선공연을 보고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군중을 비집고 풍선 속에 얼굴이 묻혀있는 광대를 흘깃 보며 숨이 막혀서 어쩌나 걱정도 해본다. 출정대는 철저하게 도심에 묻혔다. 어디론가 가 버렸다.
광안대교가 시원스럽게 동서로 놓여있다.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에서 수영만에 걸쳐 2층 다리로 건설되었고 이젠 해수욕장의 명물이 되었다. 특히 조명 시스템이 구축되어 10만 가지 이상의 색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경관조명이 유명하다. 해수욕장을 지나면 민락수변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태풍 매미가 1톤이 넘는 바위들을 올려놓은 당시를 그대로 보존하였다. 당시 태풍 피해액이 4조원을 넘겼을 만큼 커다란 상처를 남겼을 위력이었으니 돌덩이 몇 개를 육상에 옮겨 놓는 일은 일도 아니었을 것 이다. 동일한 피해를 반복해서 입지 말자는 취지로 팻말을 붙여 놓았겠다. 커다란 돌이 올라왔던 재앙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돌거북이 바닥을 기어가는 모습도 있다.
원을 지나 이제는 수영만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가야 한다. 건너다보면 손에 잡힐듯 하지만 헤엄칠 수는 없고 별수없이 수영2교를 건너야 했다. 센텀시티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부산에서 가장 비싼 땅에 살지는 못하지만 밟고는 지나간다. 요트가 수도 없이 정박한 수영만을 굽이 돌아 나온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운대 해수욕장 사이에 요트를 수리하고 정비하는 선박 수리소가 있다. 요트나 선박이 물에 잠기는 흘수선 아래에는 해초류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마치 배 밑에 고드름이 달린 모습이다. 프로펠러를 교체하거나 도장을 새로 하려고 뭍에 올라온 요트와 선박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수리소가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이어진 지역에 이채롭게 살아있다. 수리를 마친 요트를 타고 고성 통일전망대를 넘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순항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니 그 날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박정애 회장님이 출정대를 설득하려고 나섰다. 5시가 넘었고 6시30분 정도가 되어야 목적지 미포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욱이 부는 바다 바람 때문에 으스스 할 정도로 몸이 위축되었다. 목적지 미포에서 도착행사가 있는 일정이 아니라면 해운대에서 마무리하는 여론을 잠재우고자 박정애 회장님은“힘들게 해운대까지 온 것은 잊고 남은 짧은 시간만 생각하자”라고 하면서 재촉하였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동백섬을 지나 달맞이 고개를 깔딱 넘으면 미포에 이른다. 내일은 또 오늘만큼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미포에서 기장군의 대변항까지 15.2km를 궂은 날씨를 헤치면서 평화와 통일을 내재화하야 한다. 해운대는 신라의 최치원이 속세를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던 길에 빼어난 경관에 반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제주 출정팀은 속세를 버리지 않고 해운대 밤의 속세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2022년 3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