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 정중앙에 위치한 왕궁 바로 위쪽에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 신사가 있다. 이 신사에서 도보로 약 25분 떨어진 재일한국YMCA회관. 96년 전인 1919년 2월 8일 일본 제국주의의 한복판인 이곳에서 재일 한국 유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20여 일 후 3·1운동을 촉발했고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으로까지 이어졌다.
3·1절을 나흘 앞둔 25일 저녁 역사의 현장을 다시 찾았다. 1906년 세워진 재일한국YMCA(당시 조선기독교청년회관)는 조국을 잃고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한국 유학생들을 돌보고 하숙집을 알선하는 보금자리였다. 회관은 원래 현재 위치에서 50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 건물이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때 불타면서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회관 10층에는 2008년 정부 지원으로 조그만 2·8독립선언기념자료실이 마련돼 있다.
○ 일제 한복판서 2·8독립선언… 3·1운동 촉발
회관은 도쿄에 30년 만의 큰 눈이 내렸던 1919년 2월 8일을 증언하는 듯 보였다.
그날 조선 유학생 학우회 임원선거를 위한 총회가 열린다는 통지에 재일 유학생들이 속속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몰려들었다. 1층 강당을 메운 400여 명의 유학생은 모두 ‘뭔가 터질 것’이라는 예감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두 달 전인 1918년 12월 15일자 ‘저팬 애드버타이저’(일본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던 영자지)가 ‘재미 한국인들이 미국 정부에 독립 지원을 바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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