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도산 선생과 손정도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8돌을 맞이하여 임시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1881. 7. 26 ~ 1931. 2. 19)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손정도(孫貞道) 선생은 평북 강서군에서 태어났으며 아호는 해석(海石), 자는 호건(浩乾)이다. 1902년 평양에서 조 목사 집에 유숙하면서 기독교와 연을 맺었다.
그는 숭실학교를 졸업한 이후 남산현교회 부목사와 이승훈이 세운 영창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그는 다시 서울유학길에 올라 협성신학당에서 수학하고, 중국 북경과 북만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한편, 민족운동가들과 접촉하면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
해석은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하면서 독립 근거지를 세우고 독립자금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이었다. 그는 일본 수상을 지낸 가쓰라 타로 암살음모 미수죄와 105인사건 공모자로 체포된 후 경성으로 압송되어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직후 일제는 선생이 독립군무관학교에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금광을 습격했다는 이유로 선생을 또 다시 체포하여 진도로 유배형을 보냈다.
북만지역 독립운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선생을 이 지역에서 분리하기 위한 일제의 계략에 불과했다. 이후 선생은 독립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
1918년 신한청년당을 비롯해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한편,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적극 가담하여 의정원의장(1919)과 교통총장(1921)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대한적십자회 회장(1922)을 비롯해 의용단, 흥사단, 대한교육회 등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했다. 해석은 일제의 탄압과 맞서 싸울 방도를 강구하던 중 1931년 2월 19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관련,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 자료와 사진을 4월 한달 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는 선생에 대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