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자체 선정한 1차 친일인사 3090명의 구체적인 명단과 친일행적이 발표된 29일 해당 후손들과 관련 단체들은 참회와 반발, 침묵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며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친일명단 발표를 두고 “친일 청산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한 반면 선정 기준과 정치적 의도를 문제삼는 목소리도 높아 이로 인한 논란과 갈등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참회, 반발’ 엇갈린 표정=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명단’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역사적 ‘거물’들이 대거 포함되자 그 후손과 관련 단체들은 참회와 침묵, 반발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친일명단’에 모두 27명의 역사적 관련 인물이 포함된 천도교 측은 성명을 통해 “민족사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참회의 뜻을 밝혔다. 박남수 동학민족통일회 대표의장은 성명서를 통해 “일제 말기, 침략전쟁에 혈안이 된 일제의 강압 속에 최린, 이종린 등 일부 천도교인들이 민족정기 말살정책과 침략정책에 동원돼 협력했다”며 “비록 불가항력의 요인이 있다고 해도 순국 선열들에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친일인사로 분류된 월전(月田) 장우성 화백의 아들 장학구(65) 월전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부친은 일제시대 화가로 입문하기 위해 상을 받고 활동했을 뿐 창씨개명조차 한 적이 없다”며 “부친의 친일행적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박정희 바로알기 국민모임’ 회원들은 이날 ‘친일명단’ 발표장에 몰려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 명단에서 삭제하라”고 항의하며 민족문제연구소 인사들과 거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반면 김성수, 김활란 등 대학 설립자들이 ‘친일명단’에 오른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일부 사학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단체 반응=시민·사회단체 등은 대체로 “친일청산을 위한 의미있는 작업”이라며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대승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흥사단 장동현 사무총장은 “친일 청산은 한국 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문제이며 이에 대한 구체적 명단이 발표된 이상 지난 역사를 정확히 평가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며 “다만 친일 문제를 반드시 후손과 연계하는 것보다 과거를 직시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강주혜 사업국장은 “지나간 과거를 끄집어내 벌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규명하지 못한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자유시민연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김구부 사무총장은 “이번 발표는 과거와의 단절일 뿐이며 현 정권이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판단에 따른 것 같다”고 말했고,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홍진표 정책실장도 “공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 분류한 것은 너무나 기계적인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허동연 경희대 교수는 “친일의 상황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무조건 악과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친일인사 규명은 필요하지만 신중한 검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명 포털 사이트 토론방에는 ‘친일의 기준이 뭔가’, ‘분류자 마음대로 기준을 적용하면 친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등의 비판성 글이 다수 게시됐다. 일부 네티즌은 ‘일장기를 달고 대회에 참가한 손기정·남승룡 선수도 친일행위자 아닌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재홍 기자 h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