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도산의 말씀> 공모 우수작
도산의 말씀은 내 삶의 기둥
도산 안창호선생님을 내게 소개해 준분은 내가 경북 청송군 안덕중학교 1학년 때(1955년) 생물을 가르쳐 주신 전성계 선생님이다 그분은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고향은 이북이며 6.25때 의무장교로 참전하여 소령으로 예편하고 교사가 되었는데 수업시간이나 조종례(朝終禮)시간에 도산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시리즈로 해 주셨기에 나도 어느 새 도산을 마음에 품고 그분처럼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도산의 말씀은 그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마는 그중에서 무실역행(務實力行) 충의용감(忠義勇敢)을 좋아하였다. 가난한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였으나 대구에 우리나라 최초 나일론회사가 생겨 생산직 여공으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주경야독 어려운 고비마다 “귤 한 개를 따는 것이 애국”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떠올리고 직장의 힘든 일들을 극복하였다.
도산선생님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실력을 쌓으셨으며 나라의 독립과 정의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시다 돌아가셨음을 마음 깊이 새겨 나도 용감히 살아갈 수 있었다. 한국나일론 시절 부족한 교양을 쌓기 위해 신문을 두 가지 정기 구독하여 한자 (漢字) 실력이 길러졌고, 성실과 노력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근검저축하여 6.25때 불탄 고향 집을 다시 짓기도 하고, 부모님께 젖양을 사드려 젖을 짜서 영양보충 하시도록 하였으며 오빠의 대학등록금을 대주기도 하였다.
야간대학에 들어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 몇 학교를 거쳐 모교인 안덕중학교에 부임했더니 고향 사람들이 “승자를 보아라. 형편이 어려워 대구 공장으로 취직해 가더니 중학교 선생님이 돼서 돌아오지 않았느냐?” 라고 학교 못 보낸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알맞은 사례의 주인공으로서 회자되었다.
서울에서 교사생활 중에 항상 도산의 말씀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네가 인격자가 되어라” “네가 지도자가 되어라” “진리는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이루는 때가 있다.”는 선생님의 어록은 복도에나 교실에 게시하고, 때때로 큰 소리로 외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학생과 함께 낭독하기도 하였다. 인격자가 되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결과 교육계에서 장학사 교감 교장이 되어 학교 교육과 학교 운영을 잘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봉직하다 정년으로 교직을 마감했다.
정년 후도 다시 대안학교 교장으로서, 또 청소년 인성문화원 원장으로서 정년 없는 사회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정신으로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고 반듯한 사람을 기르는 일을 점진 점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글 : 단우가족 조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