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구 인문학 마을 만들기-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상촌 건설 1호를 꿈꾸며
이 사업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고 안병욱 교수님께서 영전하신 곳이 동수리이고, 또 그 곳에 선생님의 철학사상을 기리고자 ‘이해인 시문학관과 안병욱·김형석 철학의 집(이하 시문학관과 철학의 집)’이 소재합니다. 양구군에서는 흥사단 아카데미운동을 시작하셨던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고 선생님의 철학정신을 잇는 사회적 활동을 고민하던 차에, 흥사단으로 문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흥사단은 ‘시문학과 철학의 집’에서 양구군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습니다. 강좌가 양구군에서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교육대상을 군인으로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양구군에서는 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본격적인 개발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흥사단이 사업진행의 전문가로서 사업전반을 코디네이팅하는 중간지원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사업의 내용과 구체적 사업계획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2014년 7월 흥사단과 양구군은 관내에서 인문학 강좌의 개최와 ‘시문학과 철학의 집’의 공동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진행한 ‘인문학 익는 마을 기본계획’ 연구를 통해서 흥사단은 마을개발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인문학 익는 마을’이 조성될 동수리에는 ‘이해인 시문학과 안병욱·김형석 철학의 집’이 소재하고 있으며, 고 안병욱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흥사단이 제시한 기본계획을 통해서 인문학 익는 마을 동수리에는 시문학관이 신축되고 캠핑장, 자전거 대여소, 사색의 길, 어린이 도서관 등의 시설이 새롭게 조성될 것입니다. 여기에 시문학과 철학,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자원 등을 주제로 하는 각종 전시·체험·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이 사업은 다른 마을 만들기와는 달리 ‘인문학마을’ 만들기인데 그 인문학적 전제가 되는 특징적 내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양구 동수리에 있는 ‘시문학과 철학의 집’을 거점으로 고 안병욱 선생님께서 주의주장하셨던 철학사상을 인문학 익는 마을의 기본철학정신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청년 안병욱 선생의 인생관인 生卽道, 生卽學, 生卽修, 生卽動 등이 인문학 익는 마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편 ‘시문학과 철학의 집’에서 진행하고 있는 김형석 교수의 ‘나눔 생활과 행복' 실천을 ‘인문학 익는 마을’ 조성 계획의 기본정신으로 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문학 마을 구성의 기본 요건인 나눔의 행복을 구체적으로 생각·생활·생산·고생을 함께 나눔으로써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삶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개인과 개인이 모여 이웃을 이루고 이웃과 이웃이 모여 마을을 이루듯, 마을을 통해서 공동의 노력과 개인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협력적 모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개인을 돕는 품앗이나, 마을공동 노동협업조직인 두레를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맞게 바꾸어 나갈 예정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마을 주민들의 상호 이해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여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모델을 구현합니다. 공동의 이해를 통해 공동선(共同善)을 목표로 생산과 소비가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때, '선하고 아름다운 삶', '밝은 이상'을 실천하는 행복의 나눔을 실현할 것입니다. ‘인문학 익는 마을’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현실적 문제와 갈등이 드러나긴 하겠지만, 흥사단이 양구군과 동수리의 중간에 서서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면, 마을에서 겪는 고생의 시간은 참사랑과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특히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어느 것이었는지 말씀해주세요.
마을을 관광지로 바꾸는 것은 쉽습니다. 보기 좋은 유명 작가의 조형물을 세우고 멋들어진 건물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하면 됩니다. 그러나 마을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돌아보고 그들의 인문학적 가치를 실현하며, 삶의 터전을 꾸려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처음 느꼈던 것은 ‘인문학이 익는 마을’인데, 인문학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의 계획에는 마을 주민들이 없는 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관광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연구진들은 마을에서 실행가능하고 마을의 인문학적 자원을 발굴하여 새로운 가치를 찾는 작업에 열중했습니다. 송태효 선생님께서 제공해 주신 ‘에코 뮤지엄’이나, EU에서 진행하는 주민주도적 개발정책 자료들은 매우 의미있는 시선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전국 단위의 많은 마을 사업에는 마을과 주민이 없고 마케팅만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의 삶의 궤적들은 중요치 않고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제공할 뿐입니다. 연구진들은 기존의 마을개발 사업을 좇기 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살아있는 마을개발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의 철학과 문화를 사업의 주요 테마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가마타고 시집 온 이야기’, ‘삼짇날 화전놀이 이야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보릿고개 이야기’ 등은 그들이 마을에서 켜켜이 쌓아온 삶의 역사이자 문화입니다. 연구진들이 찾을 수 있었던 ‘인문학 익는 마을’에서 구현해야 할 마을주민들의 철학이자 문학이었습니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던 대상은 마을주민들이었습니다. 마을주민들이 계속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어떠한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찾았고 마을주민들에게 지금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좇았습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의 부족한 부분을 흥사단이 돕고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도산의 이상촌 건설과도 연결시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상의 이상촌 건설과 현대 사회에서 마을 만들기는 어떻게 같고 다를 수 있는 지 말씀해 주세요.
도산 선생님께서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이상촌을 구상하셨다면, 앞으로 흥사단은 정의롭고 행복한 공동체를 실천하기 위한 이상촌 건설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산 선생님께서는 땅을 빼앗긴 동포들의 생존과 그들이 정착하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원하셨습니다. 산업을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조국의 독립을 대비하기 위한 근거지를 만들되, 사회·경제·문화 등 사회 모든 방면에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구상이었습니다.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이은숙 부원장님께서 이상촌보다는 장리욱 박사의 견해대로 ‘모범촌’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한편 도산 선생님의 모범촌 구상은 해방된 강산에 새롭게 건설될 조국의 기틀을 잡는 최소 단위이자, 사회대공을 실천하는 기반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을개발 사업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마을개발은 초기에는 관광시장의 진입과 농업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체험마을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마을에서는 마을 내 공공재와 사유재의 이용과 사용에 관한 갈등, 도시자본의 마을유입에 따른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의 갈등, 정부의 보조금 횡령과 공원화된 마을 경관 등 부작용이 많습니다. 또한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계획을 통해서 마을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무분별하게 보조금을 집행하다보니, 자격미달의 인력들이 컨설팅 시장을 형성하여 전국의 마을을 헤집고 다닌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마을 주민들 스스로 마을운동을 시작하여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더욱 왕성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 마을을 연결하며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산 선생님의 모범촌 구상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흥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특히 이번 ‘인문학 익는 마을’ 조성 사업을 흥사단이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모범적인 마을로 자리매김한다면, 도산 선생님의 모범촌 구상에 한발 가까워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흥사단이 해야 할 마을개발 사업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말씀해 주세요.
이번에 진행했던 ‘인문학 익는 마을’의 경우는 매우 특별했습니다. 고 안병욱 선생님께서 북녘을 바라보며 영전하신 곳이기도 하고, 당신께서 추구하셨던 삶의 이상이 우리의 과제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또한 동수리는 38도선 이북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미 남과 북의 정부를 모두 경험했던 특별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대부분의 마을개발 사업은 철학과 패러다임의 부재로 인해 공동선을 찾지 못하고 소득을 향상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흥사단은 앞으로 남북분단의 현실을 평화실천의 행동으로 바꾸고 통일을 준비하는 다음세대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야 합니다. 특히 농산촌지역의 인력부족과 노령인구의 증가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주민들의 소득과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협동 생산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주민들 스스로 민주주의와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모범적인 농촌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범촌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흥사단은 지금까지 마을개발 사업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연구팀 내부에서 스터디와 연구를 함께 진행해야 했습니다. 앞으로 도산 선생님의 모범촌을 염두에 두고 마을개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면, 마을개발 사업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이 시급합니다. 여기에 흥사단 아카데미의 단우들과 전국 지부의 훌륭한 지역인재들이 네트워크할 수 있는 사업운영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정리 : 김선영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