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기념사업회> '2015년 도산안창호글짓기공모전' 학생부 대상수상작
촛불이 가득했던 곳에서 불빛이었던 사람
- 안창호 평전을 읽고
솔직히 말해서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제대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뭔가 제대로 조금씩 알게 되는 중인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역사를 배우는 시간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했기 때문에 집중도 하지 않았고 조는 경우도 좀 많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 수능 때문에라도 한국사는 신경을 많이 기울여야 하는 과목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솔직히 한국사는 어차피 문, 이과에 상관없는 수능 공통과목이니 열심히 해야겠지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학업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기나 긴 역사 속 여러 가지의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서 하나, 둘 지식을 얻게 될 때, 나는 단순히 ‘아! 그렇구나!’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와 인물의 상황에 몰입하면서 한국사 교과서를 읽게 된다. 그만큼 우리 역사는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재미있고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사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 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보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가 정말 크고 또 많다.
그 중 특히나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부분은 독립투사들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서 싸우는 시기였다. ‘내가 만약 저 시대에 저들과 함께 있었다면 나 역시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저분들처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스레 책 속의 독립투사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또, 무장투쟁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독립투사들도 존경스러웠지만 더욱 존경스럽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사실 조용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셨던 분들이다. 그 이유는 그분들 중에는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일본에게 협조하고 일본 사람의 비위를 맞추었다면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만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독립투사 안창호 선생님이다.
물론 그의 업적에 관해 말하는 건 입이 아플 정도다. 학업을 위해 미국에 갔다가 돌아와 서 신민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수많은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이끌면서 일본에 맞설 독립운동가들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일에도 앞장섰던 분이다. 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새겨진 애국가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안창호 선생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국내외로부터 한 노력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내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일은 이토 히로부미의 ‘청년 내각’ 제안을 선생이 단호히 거절한 일이다.
사실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일단 안중근 의사가 먼저 떠오른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이토 히로부미는 안창호 의사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 당시의 이토 히로부미는 굉장히 노련한 정치인이었고 일본을 ‘혁신’한 개혁가로 일본인들에게 크게 존앙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사람을 잘 다루고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앞세워 통감정책을 자행한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의 적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알게 모르게 안창호의 활동을 자세하게 추적 및 조사하였고 미국에 간 안창호가 자신의 암살을 목적으로 귀국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안창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활동을 낱낱이 보고받고 있었다. 그래서 맨 처음엔 단순히 안창호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안창호가 단순히 독립투쟁만을 목표로 하지 않기에 미국 유학을 갔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여러 선교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계획을 수정했다.
독립운동의 핵심 축이자 영리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안창호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독립운동 단체들을 분열시키려고 했던 거다. 그러나 안창호는 첫 만남에 이토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두 번째 만남 때는 이토가 직접 안창호를 찾아갔다. 안창호는 “당신이 상황이 좋지 못했던 일본을 혁신했던 것처럼 한국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혁신케 하라. 삼국의 영구평화를 위한 방법은 지금 한국에서 일본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뿐이오.” 라고 말했다. 이토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텐데도 “안창호. 그는 곧고 바르다. 어디서든 크게 될 사람”이라고 말했다. 안창호는 이토로부터 내각을 맡으라는 제안까지 받았으나 그 역시 바로 거절했다.
또한 통감부에서 순종과 이토가 서북지방을 순시할 때 그 지역의 모든 학생이 일장기를 교차하여 들고 있게 하라고 지시하였을 때, 안창호는 대성학교 학생들에게 그 일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안창호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그것을 내치는 모습은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이토 히로부미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안창호는 이토 살해에 연루된 인물로 의심을 받고 체포되었지만 다행히 증거가 없어 수감되지는 않았다.
안창호 선생의 독립을 위한 활약들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그 당시 독립투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뜨거웠는지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대성학교를 세워 나라의 기본이 되는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고, 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넘어가 독립신문을 만드는 일도 계속 이어갔다. 또한 민족운동단체인 홍사단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100년을 넘게 이어오는 단체이기도 했다.
그처럼 쉬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삶만을 살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계몽운동가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풀려나 휴양하던 중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가 국내외를 넘나들며 뿌린 독립의 씨앗은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결국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안창호 선생에 대해서 아는 게 많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독립투사 안창호의 인생이 보다 새롭고, 보다 놀랍고, 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찬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어 뭔지 모르게 뿌듯하고 기뻤다. 눈앞의 이익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기 자신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안창호 선생의 삶의 자세는 마치 그 당시 모든 대한민국의 권력층들이 일본의 힘 앞에서 촛불처럼 나부끼다가 자신의 의지를 꺼뜨려버리던 것을 보란 듯이 깨뜨려버렸던, 촛불 아니 그저 불씨에 불과했던 권력층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촛불이 아닌, 오히려 밝은 불빛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빛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러한 자세들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탄압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자세이다. 주체적, 능동적이며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안창호 선생의 삶의 자세를 배우고, 본받고, 실천하자.
글 : 유석주(대성고등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