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은 창립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흥사단 창립 초기의 기록과 자료들을 취합할 목적으로 2012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을 탐방하였습니다. 이 글은 본부 정책기획국 문성근 국장이 탐방기간 중 6월 14일 ~ 16일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총 3회에 걸쳐 뉴스레터에 게재할 계획입니다.

‘도산과 흥사단의 발자취를 따라’ 제2편
리들리(Reedley)
한국 이민역사 기념비, 독립문(Korean Heritage Pavilion and Korean Independence Gate)
미국 이민 초기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이어 집단 이주했던 캘리포니아주 중부의 리들리시에 있는 기념비와 독립문이다. 한인 이민정신 및 독립정신 그리고 한인 정체성을 후세에게 전해주기 위해 한인역사연구회가 발의하여 2010년에 건립하였다. 독립문은 한국의 독립문을 1/4정도로 축소한 모형으로 높이가 4.2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다. 독립문 모형 앞에는 안창호, 김종림, 한시대 단우 등 이 지역에서 활동한 애국지사 10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독립문 모형 및 기념비 건립은 리들리시에서 부지를 포함해 10만 달러를 제공하고, 한국의 국가보훈처의 후원과 현지 교민들이 모금하여 건립되었다.
독립문, 기념비 양쪽으로는 털없는 복숭아(넥타린)를 개발해 백만장자가 된 김형제사회(Kim Brothers Company)의 김형순 선생 가옥이 있다. 허름한 창고같은 흰색 건물(독립문을 보고 왼쪽)이 처음 가옥이고, 이후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건너편(독립문을 보고 오른쪽)에 가옥을 신축했다. 김형순과 그의 부인 한덕세는 리들리에서 묘목사업을 하다가,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이화여전 은사인 김호를 모셔와 김형제상회를 열었다. 김형제상회는 사업을 통해 번 자금을 독립운동과 교민들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버지스 호텔(Hotel Burgess)
안창호, 이승만 등 미주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투숙했다고 전해지는 호텔이다. 2008년 4월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에서 안창호, 이승만 두 지도자의 얼굴을 새긴 동판을 헌정했다. 처음에는 두 지도자를 따르는 후학들이 함께 헌정되는 것에 반대를 했으나, 한인역사연구회의 끊임없는 설득으로 수락했다고 한다.
현재 이 호텔은 매물로 나와 있다. 역사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이 호텔을 인수를 하여 리모델링한다면 두 지도자의 동판이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호텔 문이 폐쇄되어 있어서 아쉽게도 내부는 둘러보지 못했다.
* 현지 연구자의 말에 따르면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던 도산은 현지 교민이 이 호텔에 머물 것을 권하였지만 거절하고, 교민의 집에서 숙식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도산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잠시 이 호텔에 머물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리들리 공동묘지(Reedley Cemetery)
1862년 건립된 공동묘지로 이민 초기에 정착한 이민자를 비롯해 약 190기의 한인 묘지가 있다. 이 묘지에 안장된 애국지사로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박기벽(1998년 국립묘지로 이장), 신한민보 편집장과 동지회 회장을 지낸 이살음, 백만장자가 되어 독립운동을 후원한 김형제상회의 동업자 김형순, 김호 등이 있다. 김호의 묘는 2002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으나, 김형순의 묘는 유가족의 반대로 현지에 남아 있다. 이번 일정에 방문할 계획이 있었으나 시간상 방문하지 못하였다.

리들리 한인 교회(Reedley Korean Church)
1908년 인천 출신의 김영권이 노동자들을 모아서 가정 예배를 드린 것이 교회의 시작이다. 당시 리들리 한인 일반 노동자의 일급여는 50¢, 반장은 75¢였는데, 상당 부분을 독립기금으로 출연했다. 1936년 입당 예배를 드렸다. 현재의 건물은 김형제상회가 1938년 J St. 1408호에 대지를 제공하고, 교인들이 건축자재를 구입하여 손수 건립했다. 원래는 1922년 3월 김형제상회의 가옥을 얻어 감리교회를 설립했으나, 한국의 감리교회가 신사참배에 가담하자, 미국 장로교로 이적했다. 리들리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학국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인근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 노동자들의 친교의 장이 되었다. 1978년에 남미계 교회에 팔렸다.
* 현재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 등 교민들이 이 건물을 인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시간을 할애 받아 한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한편 리들리 시는 이 교회의 역사성을 인정하여 역사유물로 지정하려고 하고 있으나, 한인들이 당분간 유보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역사유물로 지정되면 리모델링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곳 한인 교민들은 과거의 모양으로 복원한 후에 역사유물로 지정 받기를 바라고 있다.
현 교회의 앞 공터는 1920∼30년대 한인 노동자들의 숙소였다고 한다. 교회의 옆에는 한국의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심은 것으로 보인다.

- 글 : 문성근(본부 정책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