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100주년과 새로운 100년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대한민국 이전에는 조선왕조의 이름을 바꾼 대한제국이 성립되었다. 대한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에 나라를 내줬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대한(大韓)’의 혼이 유린 된 것이다.
도산은 신민(新民)을 대한인(大韓人)으로 규정했다. ‘대한(大韓)’은 영어로 표기하면 ‘Great Corea’이다. 인류 시원 문화의 종주국이며 민족혼을 갖는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대한인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민족혼을 갖는 것이며 여기에는 역사 회복의 의미가 담겨있다.
도산은 자유 시민이 되는 것이 문명개조라고 했다. 민권운동이 전제되는 신국건설을 국권회복운동의 핵심으로 정립했다. 도산의 신국은 자유 문명 공화국이고 국민이 주권을 갖는 나라를 말한다. 1907년 도산은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 공립협회 동지들과 신민신국론을 정립하고 ‘대한인신민회’를 발기함으로써 ‘대한(大韓)’을 회복시켰다.
신민회 취지서 내용에는 ‘… 범(凡) 아(我) 한인은 내외를 막론하고 통일기관으로써 그 진로를 정하고 독립 자유로서 그 목적을 세움이니 … 오직 신 정신을 환성(喚醒)하여 신 단체를 조직한 후 신국을 건설할 뿐이다’라고 신민 즉 대한인으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산은 대중 연설을 통해 대한인의 신국은 자유 문명 공화국이며, 신국을 건설하려면 반드시 항일 독립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과 산업을 일으켜 나라의 힘을 키우자고 강조했다. 이러한 취지의 연설은 대한인들을 각성시켰다.
1907년 연해주로 가기 위해 미주에서 대기 중이던 공립협회 이강은 『공립신보』에 ‘국혼환기취지서’를 발표하고, 독립전쟁 개전론을 논설하여 도산의 대중 연설을 뒷받침했다.
1912년 도산은 해외 6개 지방총회와 75개 지방회로 확대된 대한인국민회를 망라하여 중앙총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중앙총회 헌장을 개정하였다. ‘제1조, 본회는 대한국민으로 성립하여 대한인국민회라고 칭함’이라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대한인국민회가 자치정부임을 선포하고 사실상 망명정부의 역할수행을 했다.
1919년 3.1운동을 통해 대한인은 단결하여 세계를 향해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이후 국제사회는 대한인의 독립 의지를 지지했다. 독립국임을 선언했으니 정부를 수립해야 했다. 국내외 곳곳에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대표적으로 연해주와 한성에서 내각을 구성했다. 상해에서는 임시의정원 구성 절차를 밟고 신한청년당 중심으로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열었다. 과거 신민회에서 공화국 건설과 전쟁준비론에 뜻을 같이했던 인사들이 모였다.
임시의정원 의장은 이동녕이고 부의장은 손정도였다. 파리로 파견된 김규식을 제외한 29명 의정원 의원들은 밤샘 회의를 거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대한인으로 구성된 공화국의 나라가 된 것이다. 이는 도산이 바랐던 신민신국이다. 의정원은 임시헌법 10개 조항을 법제화하고 이승만 국무총리를 행정 수반으로 하는 내각을 구성했다. 안창호는 내무 총장에 선출되었다.
도산은 6월 28일 자로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하면서 동시에 국무총리 대리로 차장급 국무원들과 합심하여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을 디자인해 나갔다. 그러나 도산은 여러 개의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도산은 통합정부 수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상해임시정부를 끌고 가면서 독립운동의 청사진과 시정방침을 제시하고 체계화시켜 나갔다.
1919년 9월 11일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은 상해, 한성과 연해주의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원칙은 국민적 기반에 의해 수립된 한성정부를 계승하되, 정부의 위치는 상해에 두고, 정부의 명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한다는 데 합의를 이룬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헌법개정안이 확정되었다. 개정된 헌법에는 제1조에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함’,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음’, 제3조에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제국의 판도로 정함’이라고 해 놓음으로써 대한민국이 국가구성의 3요소 즉, 국민, 주권, 영토를 갖추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 놓았다. 통합임시정부 내각개편에서 도산은 노동국 총판이 되었다. 한성임시정부의 내각을 따른 것이다.
1919년에 성립된 임시정부가 100주년을 맞는다. 중국 상해에서 출발한 임시정부는 국제정세의 격변과 중국 내전을 겪는 과정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초기부터 갈등과 분열이 있었지만, 도산은 어떻게든 항일 통일전선을 구축하려고 간단없이 동분서주했다.
1932년 4월 일본의 상해사변과 윤봉길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는 ‘혁명영수’ 도산을 잃고 김구를 중심으로 13년 유랑 길에 올랐다. 김구의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의 보호를 받으면서 항주, 남경, 장사, 광주 등을 떠돌다가 마침내 1940년 충칭에서 주석제로 탈바꿈하고 좌우통합을 이루었으며, 광복군을 창설하여 대한독립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1945년 해방을 맞게 되었다.
2019년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얼마 전 우리 기술로 제작된 3천 톤급 ‘안창호잠수함’이 진수식이 있었다. 진수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는 군의 사명이며, 평화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강한 군대’라고 했다. 이토히로부미와의 설전에서 동양 평화론을 맞받아쳤던, 도산의 ‘독립전쟁준비’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안창호잠수함은 한반도 바다를 지키는 진정한 의미의 동양평화의 힘으로 작용 될 것이고, 비슷한 시기에 남북 정상의 뜨거운 악수는 통일된 대한의 자존심과 역사를 회복시켜 줄 것으로 믿는다. 새로운 100년은 이렇게 서막이 오르고 있다.
* 글 : 이은숙(교육수련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