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다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논란이 거세다. 공개된 대화록 전문에서 직접 포기한다는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사실상 포기" 의사가 있었다며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서해 NLL 수역은 1960년대 북한의 대규모 게릴라 파견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도발과 충돌이 1990년대부터 십수 년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2010년의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이를 둘러싼 국민감정이 크게 경색돼 있으며, 이것이 최근의 정치적 공방에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남북간에 긴장과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보다 정확하게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NLL은 정전협정에서 해상경계선이 누락된 결과로 설정
남북간의 경계는 1953년의 정전협정에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 협정에서는 군사분계선(MDL)을 육상에만 설정했고 해상경계선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1951년 7월에 시작된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을 지상 접촉선으로 한다는 데에는 합의했지만, 이듬해 초 열린 후속 협상에서 관할수역의 범위에 관해 유엔군측 입장과 공산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다.
육상분계선 합의 뒤 북한의 연해 섬 대부분을 장악하던 유엔군이 철수하는 대신 38선 이남의 유인도인 서해 5도를 계속해서 유엔군 관할로 두는 안이 타결됐다. 그 뒤 열린 관할수역 협상에서 당시 국제법 추세에 따라 3해리로 하자는 유엔군측 입장이 관철됐다면 서해 5도와 황해도 사이에 공해가 생겼을 것이고, 쌍방 무력의 실질적 분리를 위해 12해리로 하자는 공산측 입장이 관철됐다면 그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할수역 협상이 결렬되면서 해상경계선이 누락된 상태로 정전에 들어가게 됐다.
정전협정에는 상대방의 해안에 대해 봉쇄를 하지 못한다는 별도 규정이 있었고, 이에 따라 1953년 8월 27일에 ‘한국 방위수역’이 철폐되고 그 직후인 8월 30일에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군의 해·공군 초계활동을 한정하기 위해 NLL(Northern Limit Line)을 설정하였다. 이는 당초 아군 함정 및 항공기의 북상 항행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당시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북진 주장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 선은 해상경계선이 획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쌍방간의 해상 침투나 군사 충돌을 방지하는 기능도 일정하게 수행하게 되었다.
북상 방지 및 남하 저지선에서 실질적 해상경계선으로 성격 변화
NLL을 북한이 당초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거의 궤멸 상태였던 북한 해군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설정 직후에는 이 선의 침범은 물론 이 선까지의 진출도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 뒤 해군 전력을 점차 재건하였고 1955년 3월 내각 결정에 따라 12해리 영해를 설정했다. 그러나, NLL에 대한 명시적 거부는 없었고, 간첩선 사건 등에서 이를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돌발적으로 인근 지역에서 우리 해·공군에 대한 공격이나 어선 납치를 자행하여 긴장이 고조되곤 했다.
북한은 1973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정전협정상 서해 5도 인근 수역이 자신들의 연해라고 주장했고, 그 뒤 수시로 NLL뿐 아니라 서해 5도의 영해도 무시하는 침범 행위를 자행했다. 북한은 더 나아가 1977년에 국제해양법에 근거하지 않은 이른바 50해리 군사경계수역을 발표하여 비법적인 해상장악 시도를 더욱 강화하기에 이른다. 북한 해군의 월경 도발을 저지하고 서해 5도 및 인근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강조되면서 이제 NLL은 남하 저지선으로서 의미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
1991년말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부속합의서에 “남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수역을 지속적으로 관할해 온 우리가 이따금 침범해 온 북한에 비해 문구상 크게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이를 계기로 NLL은 실질적 해상경계선으로 성격이 변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합의서 이행이 북핵 위기로 중단되면서 이 합의는 지켜지지 못했다. 1999년과 2002년의 연평해전은 북한의 월경 도발을 힘으로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했고, 북한은 이를 계기로 ‘서해해상 군사분계선’과 ‘서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하여 대결적 태세를 확고히 했다.
NLL 유지와 서해 평화 확보를 위한 발전적 구상
1998년 이후 대북 포용정책이 꾸준히 추진되는 가운데 일어난 연평해전은 그동안 우리 안보의 시금석 역할을 해 온 서해 NLL 수역의 평화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불안정한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비록 소규모라도 남북간 군사 충돌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나아가 대규모 전면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르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서해 평화 확보를 위한 비상한 노력이 추진됐다. 2004년 6월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남북은 비무장지대(DMZ)와 더불어 이 수역에서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국제상선공용망을 통한 남북 해군간 상호교신으로 적대행위의 가능성을 줄이자는 것이었고, 그 뒤에는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본격적으로 평화를 확보하고 공동의 이익을 향유하는 방법이 범정부적으로 모색되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방안은 그 결실이었다. 이는 해상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해 나간다는 정부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해주항 활용과 경제특구 건설,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과 함께 NLL 남북 수역에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함으로써 평화와 공동번영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평화수역은 육상에서의 DMZ와 같이 쌍방의 해군력 진입을 막음으로써 이 수역에서도 NLL이 갖는 북한 해군의 남하 저지 효과를 함께 유지한다는 의미를 띤 것이었다.
정쟁 담론보다 국익과 평화, 통일 관점에서 접근해야
잘 알다시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합의는 현재 중단된 상태에 있다. 정상간 합의 이후 후속 합의가 불발하고 이명박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그 이행을 중단시킨 결과다. 그 뒤 북한이 10.4 남북정상선언의 이행을 거듭 요구해 왔지만, 합의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손질 없이는 추진하기 곤란하게 되어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여운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 이 문제는 소모적 정쟁보다 국익에 기초한 건설적 담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장 위험한 이 수역의 평화를 확보하고 공동번영을 통해 장차 통일의 기틀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성숙한 국민적 이해와 이를 담는 새 정치를 기대한다.
- 글 : 흥민통 공동대표, 전 청와대 안보수석 서주석
- 그래픽 : 북방한계선(NLL)과 북 주장 해상경계선-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