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이성기(흥사단 이사)
지난 10월 7일에 이당 안병욱 교수님의 10주기 추모식이 양구인문학박물관 사색의 공원에서 있었다. 흥사단 이사장을 비롯하여 평소 그를 추앙하는 흥사단의 많은 단우가 전국에서 참석하였다. 생전 안병욱 교수님과 동갑내기 절친이시고 철학과 문학의 동반자이며, 사후 이곳 양구에 나란히 안면할 계획인 김형석 원로 교수님도 참석하여 추모사를 하였다. 안병욱 교수님은 50년대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국민에게 참된 용기와 올바른 삶의 길을 제시한 철학자였고 교육자였으며 지성의 등불이셨다. 1983년에 흥사단 공의회장, 1987년에 흥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92년부터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와 도산 아카데미 연구원 설립 대표를 맡은 바 있다. 이같이 평생 도산 선생님 말씀을 따르고 전파한 흥사단 단우로서 우리 사회의 어른이셨다.
오늘날 잊혀가는 말 중의 하나가 어른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이나 집단에서 어른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어른 말씀을 따르라”, “집안에 어른이 없어서 그래” 등을 자주 써 왔다. 어른이라는 의미는 어느 조직에서 넓고 높은 차원에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우두머리를 의미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왕이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도 있다. 예전에 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 국왕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어른은 미주알고주알 잔소리하지 않았다. 영 아니다 싶으면 “어험” 하고 크게 헛기침하면 아랫것들이 알아서 조용해진다. 어른이라는 개념은 다분히 유교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수직적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누구나 할 얘기 다 하는 민주 사회에서 그 어른이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일까?
최근 양극화 현상으로 사회가 더욱 시끄러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각자가 내는 목소리, 그 여과 없는 감정의 표출에 대한 의견이다. 한 사건을 놓고 개인이나 집단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이견이 있을까? 그들은 상대방 의견에 귀를 닫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여과하고 정제하는 중추 기둥이 없어 보인다.
정치가를 비롯하여 의견을 내는 자는 극단적으로 표현해야만 그의 주장이 먹혀들어 간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때로는 매스컴마저도 중심을 잃고 부추기는 느낌이 든다. 지겹게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 TV 채널을 돌리곤 한다.
이같이 우리 사회는 상대에게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주장이 너무 난무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자유를 누리는 신중한 사람은 적다. 만약 옳고 그름을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신(神)이 있어 “만약에 당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책임지지 못한다면 당장 지옥으로 보내겠다”라고 한다면, 그래도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내 세우며 상대방을 공격하겠는가? 혹자는 이치에 맞지 않아도 자유로운 언사는 민주주의의 특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자유는 진실하고 절제된 언어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있는가? 나라의 어른이 많으면, 안병욱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중추 지도 세력’이 많아지는 건전한 사회가 된다. 예전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사회가 혼란을 겪을 때 가끔 김수환 추기경이 매스컴에서 바른 말씀을 하시곤 하였다. 어른의 말씀에 정치가도, 진보와 보수도 자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우리 사회에 좀 더 신중하고 중립적이고, 좀 더 멀리 보는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다.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알고 실행하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단체가 많았으면 좋겠다. 도산이 말씀하신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정직한 단체와 사회가 그립다. 한 맺힌 분노를 정의로 포장해서도 안 되고, 국민을 위한다는 논리를 만들어 집단 이기적이고 당리 당략적인 목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요사이 개인과 정치집단 말고도 일반 단체들도 집단 이기주의로 양극화 진영에 앞장서고 있다. 자유와 정의를 앞세우지만, 순수성을 잃은 위장단체가 난무하고 있어 안타깝다.
흥사단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가? 건전한 민주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사회에 파급되는 효과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민주 사회의 뿌리가 더 단단해지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흥사단의 역할이다. 소위 어른 같은 단체가 되어야 한다. 배가 뒤집히지 않고 안전하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평형수가 필요하다. 흥사단은 민족의 갈 길에 목표 의식이 있는 배의 평형수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끼리 싸우다가 외세의 공격에 대비 못 했던 경우가 너무 많았다. 꼭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최근 한·중·일 지역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고, 강대국의 패권주의도 부활하고 있다. 우린 앞으로 어떻게 생존전략을 짜고 대비해야 할까? 큰 숙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