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난 세기에 이룩해온 산업과 기술의 발전 업적은 그 성장만큼이나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놓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그렇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각자도생 사회의 한계를 절감했다. 코로나 사태의 발흥으로 전 세계가 문명 대전환의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 ‘먹고 사는’ 산업사회에서 ‘죽고 사는’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와 코로나 등 자연의 대역습 앞에서 우리는 지금 근대교육과 그 연장선에 있는 현대교육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고, 사회적·공공적·생태적 가치가 결여된 한국 사회를 거듭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지금 SKY 중심, 서울 중심의 대학병목 체제, 즉 학벌체제의 공고화로 인해 초중등학교 현장의 인간화와 민주화, 그리고 공동체화와 생태화 등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상향적 운동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반시대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공교육의 구조적 모순에 균열을 내는 ‘대안학교’와 ‘혁신학교’ 운동이 싹터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차가운 학교를 ‘따뜻한 학교’로, 부조리한 학교를 ‘정의로운 학교’로, 기술공학적 학교를 ‘생태적 학교’로 만들고자 하는 교육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의 ‘마을교육공동체운동 ’또는 ‘마을결합형교육/마을학교’ 모델이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새로이 도래할 미래교육의 주체를 탄생시키는 한국교육 대전환 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의 교육혁명은 교육 패턴(밑그림)을 바꾸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과 학습의 균형, 지역사회와의 연결,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 삶의 방식, 생태적 환경 등으로 구성을 바꿔야 한다. 교육혁명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지역사회, 개인과 국가, 사람과 노동, 시민과 역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짜는 일이다. 21세기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이다. 교육혁명은 교육 영역 이외에도 생태적 환경, 고용노동, 여가, 복지, 보건, 공간, 문화, 성평등, 먹거리, 자원봉사, 인권, 시민참여, 안전, 보육, 환경, 국토건설, 과학기술, 지방자치 등 다양한 영역을 가로질러 비전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교육혁명은 삶의 방식과 사회운영의 본질에 맞닿아야 성공할 수 있다. 삶의 방식은 다층화·다기화·다양화된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기에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사회운영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20세기의 혁명은 생산력의 주인이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고자 하는 투쟁이었지만, 21세기 혁명은 핀셋으로 계급·계층의 문제를 적출하는 방식으로는 다양한 모순을 해결하기 어렵다. 생산력의 변화에 따라 나침반도 변한다. 새로운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교육혁명에서 나온다. 교육은 삶의 나침반 같은 것이다. 과거의 교육이 서바이벌형 나침반이었다면, 미래교육은 보다 성숙한 시민상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시장제일주의, 성장만능주의, 개인환원주의, 낡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AI도 나침반이 없으면 물신화되고 만다. 능력주의(능력에 따른 차별적 보상에 대한 인정 체제)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등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윤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촛불혁명을 통한 ‘민주주의’ 심화와 더불어 코로나 바이러스 발흥으로 인한 ‘생태주의’ 구현이라는 두 가지 큰 시대적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로운 사회’와 함께 ‘품위 있는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의로운 사람’과 ‘품위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서는 전인적 인간형의 출현을 요구한다. 이러한 인간형을 길러내려면 학교가 삶의 세 영역, 즉 가정의 삶, 직업적 삶, 시민적 삶의 욕구를 다루는 다목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교육에 보내는 경고는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교육이 아니라 협력하는 연대교육으로 바꿔야 하고, 생명을 죽이는 기술공학적 교육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생태교육으로 바뀌어야 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교육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민주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려면 수능시험을 고교졸업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하고, 병목화한 대학 서열체제를 완화해야 하고, 대학등록금을 폐지해야 하고, 노동시장을 민주화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체제의 탄생을 위해서는 ‘민주적 주체’가 탄생되어야 한다. 대안적 교육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다양한 영역 간의 연구와 협업 체계를 상시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교육의 재설계이자 사회의 재설계라는 연계적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사람이 사회를 만들고, 그리고 사회가 사람을 만들 수 있는 호환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혁명이 사회혁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인간형성을 위한 교육혁명과 사회변화를 위한 사회혁명이 분리되지 않아야 ‘좋은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
교육혁명은 시냇물, 지류가 모아져서 강이 되고 다시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과정과도 같다. 강물은 오늘도 흐르고 내일도 흐른다. 오늘의 강이 내일의 강일 수 없다. 흘러야 강물이다. 교육혁명도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른다. 교육구조를 포함한 사회구조의 벽을 허무는 작은 틈새와 점진적 변화는 혁명적 변화를 위한 작은 촉매제이다. 교육혁명은 단칼의 승부가 아니다. 교육혁명이 시냇물에서 바다에 이르는 과정은 수많은 욕망이 합쳐지고 여과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혁명은 지속성이 중요하다. 교육혁명은 시간도 걸리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지속성을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 그릇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산업화시대에는 긴장이 요구되는 그릇이 필요했지만, 각자공생을 추구하는 21세기에는 느슨하지만 거대한 연대의 그릇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그 그릇을 빚어내는 문명 대전환을 이루어내는 주체자로서 대안적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남아공 전 대통령 만델라가 '교육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최대의 무기‘라고 역설하듯, 교육을 계층 사다리로 보는 도구주의적 관점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글 : 심성보(흥사단교육운동본부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