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신주백(성공회대 교수,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올해가 흥사단 창립 110주년이다. 흥사단은 일본의 지배를 반대하며 등장한 민족운동 단체 가운데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사회운동단체다. 유족이나 이해관계자가 아닌 후대의 사람들이 창립 주도자의 정신을 자발적으로 이어받아 당대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거의 유일한 단체가 흥사단이다. 달리 말하면 흥사단은 한국근현대사 150여 년의 역사가 직면해 왔던 시대의 과제인 문명화, 독립, 건국과 민주공화, 경제성장과 민주화, 분단극복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꾸준히 행동해 온 단체다.
흥사단은 힘과 실력 양성을 토대로 자주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창립되었다. 비전을 실천할 헌신적인 지도 인물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둔 인도적 기관이기도 했다. 흥사단의 정신적 지주인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 이후에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균등하게 잘 살 수 있는 대공주의(大公主義), 곧 민족균등주의를 실현하는 참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 반영되었다.
하지만 독립이 전제된 대공주의 국가는 꿈에 그리는 이상적 국가론이었다. 해방 후 전개된 좌우대립과 전쟁 그리고 고착화된 분단체제는 그 이상을 현재화하려는 한국인의 상상력을 억압하였다. 흥사단 또한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아 오랜 기간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불투명한 채 사회교육에 치중하였다. 조직의 이름으로 사회 개혁적인 뭔가를 선도하는 활동을 지속하기보다 회원들 개개인의 수양을 강조한 때도 있었다.
1987년 6·10민주 항쟁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1990년대 들어 흥사단에 새로운 자양분이었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운동의 본격화 시점에 발맞추어 조직의 이름을 내걸고 다양한 사회적 아젠다를 제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흥사단의 3대 시민운동인 민족통일운동(1997), 투명사회운동(2001), 교육운동(2002)이 대표적인 보기일 것이다.
흥사단은 3대 시민운동을 축으로 다양한 풀뿌리 시민운동을 펼쳐 왔다. 가령 일본의 식민지 역사왜곡 대응, 환경·에너지 운동, 소비자 보호, 북녘동포 돕기, 공명선거 캠페인, 청소년 인권운동 등을 벌여 왔다. 각 지부는 지역의 현안과 연계한 의제를 개발하고 다른 지역 단체들과 연대하며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해 왔다.
최근의 활동 가운데는 흥사단만의 장점을 잘 드러내며 조직에 새로움을 더해주고 있는 독립유공자후손돕기운동과 지구촌 시민사회 활동이 눈길을 끈다. 독립유공자후손돕기운동은 2005년부터 참된 나라 사랑을 실천한 독립유공자와 그들의 후손을 국가 사회적으로 예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이 운동은 흥사단의 탄생과 역사성을 현재와 연결 지어 매우 적절하게 구체화한 기획이다.
독립유공자후손돕기운동이 국내에 한정된 의제라면, 지구촌 시민사회 활동은 글로벌 의제로서 흥사단이 지향하는 가치를 한반도에 가두지 않은 활동이다. 흥사단은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특별 협력적 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를 획득하면서 UN회의를 비롯해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 봉사활동과 현지 NGO와의 교류, 일본 대학생과의 학습교류회 등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두 운동은 21세기 들어 한국과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성숙에 기여한 신선한 활동이었다고 하겠다.
이렇듯 독립운동에 뿌리를 두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현창해 온 흥사단은 일제 치하에서도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뒤로 물린 적이 없는 단체였다. 광복 이후에도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 온 사회운동조직이다. 흥사단의 역사 자체가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자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흥사단의 진정한 무게감, 존재감, 정체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100% 만족스럽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흥사단의 ‘2대 강령’, ‘3대 수련’, ‘4대 정신’을 단우 개개인이 실천해 왔지만, 그것이 곧 이상적 국가 이념인 대공주의를 향한 실천과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다고까지 말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한국현대사와 맞물려 생각할 때 방향성의 불투명함이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3대 시민운동이 흥사단만의 비전을 녹여낸 사회운동으로 진화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달리 보면 강령과 수련, 정신의 강조가 개개인의 영역으로 제한되어 온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누적된 제한성을 넘어서기 위해 무모하고 과감하게 상상할 필요가 있다면, 앞으로 흥사단은 100여 년 전 안창호와 선배 단우들이 꿈꾸어 왔던 미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합의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실현해 갈 수 있게 무모하면서도 과감한 상상력을 키우고 능동적인 실행력을 갖추어 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분단체제의 지속 자체가 대공주의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은 한반도와 그 주변의 역사갈등과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고 완화하는 복잡하고 힘겨운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은 역사정의를 실현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창조의 과정을 의미한다. 어느 국가 일방의 노력이나 힘으로 실현할 수도 없고, 정부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비정부기구의 노력과 협력까지 동반해야만 가능할 수 있다. 중층적으로 전개될 창조의 과정은 ‘지역으로서 동아시아’의 연대를 향한 움직임으로도 가시화할 것이다. 다자적 협력을 실현하고 공존하는 과정 자체를 민족균등의 가치가 뿌리내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