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산 선생이 홍언에게 보낸 편지.(1931.11.6.) 도산 선생은 이 편지에서 ‘대공주의’를 언급했다.
21세기를 흥사단과 함께_대공주의의 재발견
‘21세기를 흥사단과 함께!’라는 새로운 구호를 ‘참여가 힘이다!’라는 기존 구호와 함께 즐겨 쓰고 있다. 흥사단에 애착을 갖고 투신해온 우리들의 생각을 도산의 이상, 철학, 사상과 비교, 반추해 보건데 우리의 진부하고도 무기력한 흥사단 운동의 자세를 21세기형으로 형질을 변경하고 추동코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21세기와 흥사단을 필연적으로 관계시키고 미래지향적으로 진화, 발전시키고 싶은 심경에서 이 제목의 글을 쓰려는 욕구가 생겼다.
도산의 혁명적 정신세계
도산의 생애를 추적해보면 초지일관 진보개혁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구한말 일제하의 엄중한 시대상황이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수많은 애국지사 및 지성인들을 그러한 철학과 사상의 틀 속으로 내몰았을 것으로 쉽게 짐작되지만 시대를 읽는 도산의 거시적 정신세계는 특히 남달랐다. 소싯적 서당에서 알게 된 선배 필대은의 영향을 받아 시대를 터득하고 단독 상경하여 구세학당에서 신교육을 받고 파란만장한 첫 사회생활을 독립협회에서 시작한 것 자체가 시대를 선도하는 진보적 도전적 생애를 보여준다. 도산은 전환기적 세계사를 읽고 웅지를 품고 미국유학을 결행했지만 당면한 조국의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은 그의 유학생활을 순탄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도산의 진보적 사상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 할 수 있겠다. 그의 독립운동 초기의 공화주의와 후기의 대공주의가 그것이다. 서구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었던 공화주의는 군주제를 폐하고 3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표방하였기에 주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상체계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공화주의를 도입하고 조선의 군주제를 폐지하려던 개화파 지도자들의 주장은 오늘의 시대적 관점에서 볼 때 당연했을지 모르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가히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도산이 처음 시도했던 정치적 결사체인 신민회의 기본노선이 공화주의이었다는 것은 대한제국에게 일제에 못지않은 커다란 위협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공화제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지 오래이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으나 경제체제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세계적으로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도 커다란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현대정치사를 통해 불행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더불어 유입된 자본주의는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더욱 복잡다단하게 만들었다. 분열적 독립운동을 조장한 최대의 원인은 좌우 이념대립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도산이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것도 바로 이 문제였을 것이다. 국민대표회의, 대독립당, 대일전선통일동맹 등 도산이 상해임시정부의 주변부에서 통합적 독립운동을 끊임없이 시도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치열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을 겪는 동안 도산이 결론적으로 창안한 사상적 집대성작이 바로 대공주의다. 대공주의의 최대 의의는 제로썸 관계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승적으로 포용하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독립운동의 절정기에 좌우의 분열을 막고, 도식적 중도의 선택이 아니라 논리적 합리적 수렴화를 추구한 이상적 결과물이었다. 대공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사상적 분열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커다란 함의가 있다. 사실 사회주의를 선호했던 당시의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군정과 극우 이승만 정권은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19세기 말부터 서구에서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대안체제로 사회민주주의가 선호되었으며 오늘날 대표적 사회민주주의 성공 국가들로 스웨덴 등 북구라파 제국, 덴마크, 독일, 프랑스 및 캐나다를 들 수 있는데 이들 국가들의 행복도는 세계 최상위를 점하고 있다.
대공주의 - 포용적 사상체계
오늘날 대공주의가 우리에게 갖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 첫째는 경제민주주의이요, 둘째는 단일 체제하의 완전 통일을 위한 논리적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는 체제라는 점이다. 세계적 구냉전 체제하에서 양극을 점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진정한 경제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오늘날 한반도에 잔존해 있는 양극화된 체제 또한 진정한 경제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자본주의는 미국의 주도로 본래의 모습마저 일탈, 신자유주의화 되었고 이마저 대한민국에서는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했다. 북한은 어떤가? 북한의 공산주의는 소위 북한식 주체사상으로 변신했으나 그 근간은 공산주의이며 조선노동당 사회주의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완벽한 국가주도형 체제로서 일당독재에 의해 강제되기에 근원적으로 경제민주주의와는 방향성이 다르다.
잘 알려진 대로 대공주의의 골격은 정치평등, 경제평등, 교육평등, 민족평등의 4대 평등주의이다. 도산이 1932년 윤봉길 의거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어 일경에 피체되고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3년여간 도산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고 구익균 단우에 의하면 대독립당의 당강이 대공주의에 기초하였다고 한다. 도산의 1932년 서울로의 압송으로 사실상 도산의 독립운동은 끝나게 되며 대공주의에 대한 이론적 발전도 거기서 멈추게 된다. 도산이 상해를 떠난 후에도 다행히 대공주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고 민족혁명당 및 한국독립당 그리고 제헌헌법을 통해 그 기본정신이 맥을 이었으나, 해방 이후 미군정 및 극보수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대공주의는 사장된 채 장구한 은둔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제 대공주의는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민족 앞에 그 모습을 보여야 하며 나아가 21세기화되어야 한다. 도산이 못다한 이론적 실제적 진화발전을 시도해야만 한다. 그 사명은 우리의 몫이다. 세계적으로 공산주의는 종언을 고했고 자본주의도 변화를 강요받아 왔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정치군사적 동맹을 매개로 주로 미국과 일본 및 한국에서만 가쁜 숨을 쉴 뿐이다. 미국은 은근히 자신의 체제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오직 경제 강대국 미국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달러화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불공평한 제도이다. 신자유주의가 진정으로 공정하려면 미국 달러화의 대척점에 있는 여타 제국의 노동에도 날개를 달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보편적 가치중심의 대정돈
바야흐로 인류문명의 전환기적 길목에서 인류의 사회 및 역사는 보편적 가치중심적으로 정돈되어야 한다. 지난 질곡의 한민족사도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정돈하고 이념적 갈등과 대립도 미래지향적 민주주의라는 대원칙하에서 대승적으로 대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의 격언에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남북한의 비민주적 체제의 요소를 비판하되 이를 주장하는 위정자들을 주요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재벌의 존재, 문어발식 확장 및 재벌 편향적 정부정책을 비판하되, 재벌 가문이나 재벌 옹호 정치인과 관료들을 표적으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다. 죄인을 끊임없이 증오하는 결과는 인간사회를 더욱 깊은 갈등의 골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대공주의,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는 구냉전체제를 주도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체제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광의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확대하는데도 공헌했다고 생각된다.
안타깝게도 일부 단우들은 아직도 대공주의의 존재 및 그 가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흥사단은 이념단체가 아니라고 한다. 구체적 핵심적 내용인 4대 평등의 존재는 아예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공주의는 이념, 사상이 아니라 멸사봉공의 기초적 철학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대공주의의 출발점은 멸사봉공의 기초적 철학적 개념에서일 것이다. 무릇 모든 사상은 나름대로의 원론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는 이념이 아닐까? 자본주의 또한 공산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오늘날 매우 영향력 있는 이념이다. ‘사회’라는 개념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그러한 이상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만이 이념인 것이 아니다.
대공주의의 재발견과 21세기화
대공주의의 보다 구체적 내용인 4대 평등은 1931년 11월 도산이 미국에 있는 홍언 단우(흥사단 창립시 경기도 대표)에게 보낸 회람에 수록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대공주의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박만규 단우의 주장에 의하면 도산의 전기를 쓴 주요한 단우나 이광수 단우는 도산의 독립운동 후기의 대공주의 활동을 목격하지 못한 채 상해를 떠났기에 대공주의에 대해 거의 무지하여 그들이 쓴 도산전기에서 제대로 기술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대공주의에 회의적인 단우들이 새겨 들어야할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이들 일부 단우들은 주요한이나 이광수가 쓴 도산의 전기를 탐독하고 여기서 묘사되고 있는 도산의 모습이 전부인 양 오해하여 대공주의를 도산의 사상적 유작으로 수용하는데 인색하다. 주요한과 이광수가 쓴 도산의 전기가 주로 도산의 훌륭한 인품과 철학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나 도산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결정적 헛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도산의 진정한 사상을 탈각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은 도산의 존재감을 반쪽 내거나 지도자 도산의 핵심을 거세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산의 위대한 사상적 유산인 대공주의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흥사단 자체의 21세기형 현대화, 조국과 민족을 위한 민주주의의 구현 및 통일 한반도의 도래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작금에 들어 전개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각변동과 진보적 국민여론의 확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시대를 잘 읽으려는 노력과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대공주의가 대환영을 받고 기지개를 펼만한 시대가 도래해 있는데 팔짱 끼고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손에 쥐어진 대공주의의 시대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정신을 국민에게 적극 홍보하고 교육해야 한다. 본부에서 재작년 5월 13일 최초로 대공주의 연구발표회를 가진 것은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사실 도산의 대공주의는 미완성작이다. 기초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며 아직 구체적으로 논리가 전개되어 있지는 않다. 바야흐로 21세기를 출발하면서 그 책무를 우리가 감당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이다. ‘21세기를 흥사단과 함께’라는 구호 속에 이러한 소망을 담고자 한다.
단우들이어 분발하자!
대공주의를 재발견하자!
조국과 민족의 21세기를 대공주의 정신으로 추동하자!
도산과 흥사단은 21세기와 함께 부활해야 한다!
흥사단이 부활하는 날 우리 자신도 부활할 것이다!
* 글 : 정광채(뉴욕지부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