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의 혁명성
- 정치노령화 시대 대안 ; 청소년 참정권 -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데미니 투표권을 공론화한 적이 있다. 데미니 투표권은 어린이 참정권을 제도화하려는 운동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데미니 투표권에 대한 논의는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 보장’이라는 사회적 성찰과 실천적 방안 모색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인 것처럼 ‘참정권’의 역사 역시 그렇다. 가령, 지금은 당연시되는 여성 참정권 주장의 경우 백여 년 전에는 엉뚱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여성들의 헌신과 투쟁에 의해 20세기 초반 노르웨이를 필두로 덴마크, 소련, 폴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에서 여성 참정권이 확산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2년 유엔총회에서 ‘여성 참정권 협약’이 채택되면서 비로소 민주주의 제도의 표준이 되었다.
다른 관점에서 여성의 참정권 제도화 과정을 해석하기도 한다. 20세기 초반, 주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여성 참정권이 확립된 것은 여성의 전쟁 동원을 위한 정치적-법적인 장치였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의 선거연령 하향 과정에서도 1960년대 당시 청소년(18세 이상 청소년)들을 베트남전에 징집하고자 18세 선거권을 부여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여성과 청소년의 참정권 투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과 청소년의 법률적, 사회적 책임의 증가라는 사회적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전제하며,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서 여성과 청소년의 민주주의 투쟁과 그 정치적 성취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15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투표연령을 만 20세 이상에서 만 18세 이상으로 낮췄다. 이 법은 2016년 6월부터 시행되었으며, 고베 선거관리위원회는 ‘18세를 깔보지 마라’, ‘(18세) 당신이 움직이면 사회는 바뀐다!’, ‘우리 목소리를 우리 미래에 반영하자!’ 등의 내용으로 청소년 투표 독려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일본 총무성은 ‘인구감소 사회를 맞이하는 일본 상황에서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10대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고, 현실 정치에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라’라고 강조하였다. 참고로 일본에서 18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통 고교 3학년이나 대학 1학년생 나이이며, 만 18세 투표권 부여로 유권자는 240만명 가량 늘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5월 24일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조금 특별한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등장하였다. ‘시험만 골백번 현장경험 풍부한 진짜 교육감’을 구호로, 기호 0번, 이름은 ‘청소년’인 교육감 후보가 출마한 것이다.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캠페인은 청소년 참정권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하는 협력사업이다. 지난 2008년과 2010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출마로 ‘청소년의 목소리가 교육감 선거에서 0순위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청소년은 어른들이 결정한 교육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교육을 선택하고 만들어나가는 교육의 주체로 살 수 있어야 한다.’라고 출마 선언을 하였다.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출마는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의, 청소년을 위한’ 교육정책을 공론화하고자 나선 일종의 퍼포먼스이지만, 그 정치적인 메시지는 진지하다. 청소년 교육감 후보는 승자독식 사회의 축소판인 공교육 현장 및 꿈과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의 현장에 대해 과감한 혁신을 주장하고, 요구한다. 이는 ‘미투+위드유’ 운동과 ‘갑질철폐’ 사회개혁운동처럼 시민적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요구들이었다. 즉, 청소년 교육감 후보 출마는 ‘촛불시민혁명정부’를 출범시켰던 촛불시민혁명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 시민 생활세계의 구체적인 삶의 민주주의 구축을 위한 투쟁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아울러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의 정책은 청소년 참정권 투쟁과 그 맥락을 함께하면서, 학교 안팎에서의 민주시민교육 전면화, 교육과정 개편 등 교육 패러다임의 일대 혁신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한편, 우리 사회 청소년 참정권 투쟁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43일 동안 국회 앞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의 ‘만 18세 선거권’ 요구 삭발 농성으로 진행되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와 연대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치권의 국회 공전으로 인하여 4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였고,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가 무산되자 개헌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법률 개정안 카드로 선거권 부여 나이를 만 18세로 낮추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미래사회의 주역이 아니라 현재의 주인공’이라고 선언하며, 지난 20여 년 동안 청소년 인권 보장과 참정권 및 정치적 권리 확대를 요구하고 투쟁해 왔다. 이는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3.1운동과 4.19혁명, 6.10민중항쟁, 2016촛불혁명 등에서 증명하였듯이, 청소년들은 우리 역사상 주요한 민주주의 위기 때마다 항시 맨 처음 그리고 선봉에 서서 새로운 민주주의 지평을 열어 왔다.
100년 전 도산께서 주도하셨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보장하던 18세 선거권을 아직도 정치적인 거래 수준으로 유예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민주주의 적폐이다. 과감한 정치 혁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노령화에 대한 대안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역사적으로 진 빚을 청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별하게 우리 시대 청소년은 이미 그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만큼 충분히 성숙했고,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이제 우리 시민사회가 화답해야 한다.
* 데미니 투표권 Demeny voting은 1986년 미국의 정치학자 폴 데미니가 제안한 어린이 참정권 제도화 운동으로, 사람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정치적 권리를 갖는 것을 기본 철학으로 하며, 1920년대 프랑스에서도 논의된 적이 있다. 어린이 참정권 부여는 고령화로 인하여 노인이나 장년층이 과도한 대표권을 가지는 ‘정치 노령화’ 현상을 예방하는 취지를 가지고, 여러 방식의 실천적 모형 개발 등 연구와 논의가 진행 중이다.
△ 참고 : 안창호 ‘쾌재정 연설’과 120년 후 ‘광화문촛불 청소년시민’
http://www.yka.or.kr/html/info/column.asp?skey=&sword=&category=&size=10&page=7&no=14314
* 글 : 윤혁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