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찬사와 존경을 받으며 진행되었던 2016년 겨울 대한민국 촛불집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민주적인 시민정권으로 교체하였고, 최근에는 부패한 장기 독재정권 아베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들의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촛불시민혁명은 부당한 국가권력을 교체해 낸 시민의 힘으로 온갖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에 있으며, 시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세계를 성찰하게 하며 민주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국가권력의 개혁으로부터 시민들의 생활세계를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생활민주주의, 이는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의 근본을 깊게 성찰하게 하는 MeToo운동(과 이에 연대하는 WithYou운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2017년 타임지가 뽑은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깨뜨리는 자들’이 소개되면서, 그리고 오랜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내어 준 여성들에 의해 우리 사회의 봉건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와 일상적인 젠더 폭력에 대해 폭로와 고발 및 사회적 성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MeToo운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MeToo는 혁명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MeToo는 본질적으로, ‘어제’와 같은 인식, 삶의 태도를 더는 유지할 수 없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MeToo운동의 역사적 정당성과 거기에 수반되는 사실 행위로서의 폭력성을 고려하면 더 혁명적이다.(민노씨, 미투, 다섯 가지 유형, 2018.3.13.)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부패한 정권을 끌어 내리고, 이어서 MeToo운동을 통해서 시민사회 생활세계의 봉건적인 인식과 반민주적인 삶의 태도들을 성찰하게 하고 혁신한다는 점에서 문득 도산이 떠올랐다. 도산은 그의 나이 21세(1899년)에 당시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남존여비의 구사상에서 벗어나 남녀평등의 신사상을 계몽하기 위해 최초의 남녀공학 사립학교인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설립하여 근대화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도산은 애국부인회, 대한적십자사 등의 발기와 육성에 발 벗고 나섰는데, 1919년 6월 6일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행한 연설은 도산의 ‘여성주의’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다른 때보다 더욱 오늘은 한국 부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중략) 다만 한 가지 흠은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사나이의 부속물로 여기고 여자도 떳떳한 사람의 권리를 가진 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사나이도 또한 여자를 한 부속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여자의 큰 잘못은 스스로 몸을 낮추어 그 권리를 버리고 사나이에게 붙은 물건으로 여긴 것이올시다. 오늘날 여러분을 더 존경하고 사랑한다 함은 그런 여자 가운데서 새로운 정신이 일어나 이번 독립 운동에 사나이보다도 먼저 부인들이 시작하고 피를 흘리는 가운데서 끝끝내 유지하여 온 까닭이외다. (중략) 구미 각국에서 교육계에 실업계에 저술계에 정치계에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많으오. 여러 부인들이 참정권을 위하여 오랫동안 싸우고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여자의 힘으로 독립하는 날이 될 것을 기뻐하는 것보다 더 여자의 자격을 기뻐합니다. (중략) 나라 일은 정부나 청년이나 유지자가 한다고 생각지 마시오. 여자도 큰 직업을 가진 줄로 알고 다 합심하여 나아갑시다.” (출처: 증보판 안도산전서(주요한 편저) p622- 한국 여자의 장래)
또한 도산의 남경 생활 중에는 그의 ‘이성관’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도산)와 접견한 이는 그의 온화한 애정을 느꼈다. 여성 중에도 그를 사모한 이가 적지 아니하였다. 스승으로 큰 어른으로 사모하던 것이 열렬한 연애로 화하였던 여성도 있었다. 그가 남경에 있을 때에 어떤 여자가 밤에 그의 침실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 때에 도산은 천연한 음성으로 ‘아무개’하고 그 여자 이름을 옆방에까지 들릴 만한 큰 소리로 불러서, “무엇을 찾소? 책상 위에 초와 성냥이 있으니 불을 켜고 보오.” 하고 천연하게 말하였다. 이 말, 이 음성에 그 여자는 열정에서 깨어서 도산의 명(命)대로 초에 불을 켜고 잠깐 섰다가 나왔다고, 그 여자도 말하고 옆방에서 자던 동지도 말하였다. “그 음성을 들으니 아버지 같은 마음이 생겨서 부끄럽고 죄송하였다.”고 여자가 술회하였다. 도산은 남의 감정을 존중하였다. 남의 마음이 상하지 아니하도록 늘 조심하였다. “그 정열을 조국에 바쳐라.” 하고 얼마 후에 도산은 그 여자에게 넌지시 말하였다. 그 여자는 “나는 조국을 애인으로 하고 조국을 남편으로 하겠습니다.”하고 도산의 앞에서 맹세하고 곧 남경을 떠나 구라파로 유학을 갔다. (중략) 도산은 평생에 심중에 이성(異性)에 대한 열정이 일어난 일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 행위로 나타난 일은 없다. 남경의 모 여성 사건으로 보아서 그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알려니와 그는 생활의 다른 방면에서도 그러하였던 모양으로 남녀관계에 대하여서도 청교도적이었다. 옆에서 보기에 그는 이성에 대하여서는 혈족관(血族觀)을 하던 것 같다. 늙은 여성은 어머니로, 젊은 여성은 누이로, 어린 여성은 딸로 보라 (중략) 그것은 다만 그 부인에 대한 의리라는 관념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요, 인류 동포관에서 나온 도산의 윤리요, 자기 인격의 권위에 대한 존경에서였다. (중략) 도산은 그렇다고 이성과의 교제를 짐짓 피하지도 아니하였다. 오면 받고 만나면 친절하고 유쾌하게 접대하였으며, 여성에 대한 특별한 경의와 겸양을 보였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만일 그 얼굴이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바라보라. 곁눈으로 엿보지 말아라. 그리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라." 도산은 이 원칙대로 실행한 모양이었다. 도산의 명철한 양심은 마음의 밀실에서라도 아내 아닌 이성을 범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안심하고 그에게 친근하였고, 한번 친근하였으면 평생을 두고 그를 사모하였던 것이다. 비록 신(神)과 같이 존경하던 사람이라도 한번 육적(肉的)으로 맺어지면 부부 이외에는 동물적 결합으로 저락되고 말아서 환멸이 되는 것이다. (출처: 도산 안창호(이광수) p239-)
한편, MeToo 폭로 운동이 대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인격(사회적 명예)을 사실상 공개 처형하는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 오며, 그 효과는 대체로 확정적이고, 비가역적이어서 되돌릴 수 없거나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 이것은 그 정당성이나 방법론에 관한 논쟁 이전에 ‘대체로 사실’(민노씨, 미투, 다섯 가지 유형, 2018.3.13.)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100년 전 도산이 행한 ‘여성주의’적 태도와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이성관’에 대해 되돌아본다. ‘애기애타’의 정신, 자기 사랑이란 인격수양을 통해 구현된다는 사실을 도산은 자신의 삶으로 입증했다. 결국 우리 시대 촛불시민혁명은 국가권력의 개혁으로부터 시민생활세계의 혁신으로 완성된다는 확신으로,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는 도산의 가르침이 새삼 가슴에 깊게 와 닿는 4월 봄이 왔다.
* 글 : 윤혁(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