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유병수(단우, 전 흥사단본부 사무총장)
2015년 2월 2일, 나는 흥사단과 인연을 맺고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흥사단이 어떤 단체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랜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곳이어서 감사하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흥사단본부 협력사업국 부장으로서 내가 맡은 가장 핵심적인 업무는 아카데미 활성화였다. 토의토론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 활동을 조직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토의토론 지도사를 양성하고, 전국 중국등학생 토론대회,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를 개최하는 등 바쁘게 움직여 나갔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흥사단 아카데미를 신설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흥사단이 전국에 지부를 두고 지금껏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흥사단 아카데미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단우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 출신 단우들은 아카데미가 다시 활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카데미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기에는 학생과 학교의 상황과 환경이 변해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학교에 아카데미를 신설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도산과 흥사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플랫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틀에 가두는 동아리 형태가 아닌 개방적이고 다변화된 형태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어떤 분들에게는 불편한 발언일 수 있지만 흥사단이 혁신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협력사업국에서 활동하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이하 흥민통)로 순환보직하게 되었다. 흥민통에서는 동북아 평화통일 탐방대, 대학생 통일아카데미, 서울시 평화통일 청년리더, 평화통일교육 지도사 양성 및 청소년 평화통일교육, 평화통일교육 전문가 워크숍, 지부와의 협력사업,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웠던 것은 북과 직접적인 교류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지 못한 것이다. 손정도 단우와 안신호 여사를 매개로 북과의 교류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려 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흥사단이 북과 직접적인 교류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금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된 자금 없이 남북교류사업을 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흥사단 남북교류사업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흥사단의 남북교류사업 촉진을 위해서 해외지부들과의 협력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흥민통 활동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2021년 9월부터 본부의 사무총장 직무대행을 맡게 되었다. 흥민통에는 너무도 미안했지만, 본부의 상황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어서 다시 본부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코로나라는 상황도 있었지만, 본부에서는 비상대책위 문제와 시름하느라 제대로 일을 해보지도 못한 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23년 2월 25일, 나는 흥사단 활동가로서의 삶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활동가로서의 삶은 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88년 스무 살 시절부터 일관되게 유지해 왔던 사회운동, 그리고 활동가로서의 삶을 지속해 나가기에는 이제 나의 이기심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도 / 길이 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 스스로 봄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에 나오는 화자처럼 나는 이제 활동가가 아닌 단우로 새로운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려 한다.
흥사단은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을 중히 여기며 입단한 동지들이 모인 신성한 단체이다. 흥사단의 단우들도 정의롭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봄길이 되고,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