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국무총리실이 주최한 시민사회단체연수 참가기입니다. 연수단은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방문했습니다.
북유럽은 높은 세금, 보편적 복지, 완전고용이라는 시스템으로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1800년대 말 ~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빈곤하고 삶의 수준이 낙후되었던 북유럽이 수준 높은 복지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당면한 과제와 미래에 닥쳐올 문제를 공유하고 논쟁을 거쳐 합의하는 역사적 축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사회나 어려움이 있고 갈등이 존재한다.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삶과 사회의 양태가 크게 달라진다.
이번 국무총리실에서 주최한 시민사회단체 해외연수는 스웨덴, 노르웨이의 저출산, 고령화문제를 중심으로 복지시스템을 학습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필자는 그들의 뛰어난 복지시스템에 감탄하면서도, 그러한 정책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시민의 역량과 정부의 책임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출산, 일-가정 연계전략으로 극복
연수단이 방문한 스웨덴 사회복지부와 노르웨이 노동사회정책부는 자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저출산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되었다기보다는, 전세계적 공통 해결과제인 이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해석되었다. OECD나 타 유럽 국가에 비해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일-가정의 성공적인 연계 전략(successful reconciliation of work and family)에 기인한다. 물론 이민자의 증가에 따른 원인도 있다. 대부분 국가의 경우 여성은 직장과 가정을 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두 국가는 오래 전부터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사회정책을 실시했다.
출산과 육아에 부담이 없는 휴가제도와 수당제도, 보육·교육제도, 아동·학생수당, 주택수당, 안정적인 직장복귀 시스템 등이 이를 가능케 한다. 오래 전부터 정착된 양성평등 정책으로 남성 역시 이러한 제도 속에서 가정에 대한 책임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여성이 경제생활을 하고, 이들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안정적인 복지시스템을 운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저출산 문제는 단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보육, 교육, 세금, 고용, 수당 등 국가가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고령화, 총체적 접근으로 해결책 모색
고령화는 두 국가 모두 해결하지 쉽지 않은 과제인 듯 했다. 안정적인 의료체제를 기반으로 평균수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문제는 고령자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웨덴 국회는 ‘적극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사회와 자신의 일상생활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고령화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 국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가 역할을 분담하여 진행하고 있다. 국가는 연금과 수당을, 광역단체는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기초자치단체는 직접적인 고령자 보호(care)와 기초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점차 국가 중심에서 기초자치단체로 역할이 이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세금 분배에서도 기초자치단체의 배분이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연금(소득비례연금, 적립연금, 최저보장연금, 협약연금)제도, 의료서비스와 복지서비스, 일자리 마련 등으로 고령자의 건강한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최근에는 요양소와 같은 시설에서 보호하는 것보다 자택에서 스스로 생활하도록 지원 하거나, 자원봉사자(상담, 치료, 청소, 음식 등)를 파견하는 추세이다.
또한 집과 요양소의 중간형태인 특별주택(intermediate housing) 건설을 통해 사적인 생활과 공동생활(식사, 여가 등)을 적절히 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스스로 건강을 점검하거나 의료기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증가하는 고령자를 요양시설에 다 수용할 수 없게 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고령화의 또 다른 사회적 문제는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그만큼 세금을 내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령화문제 역시 노동, 의료, 복지, 주택, 조세, 행정 등 국가 총체적인 문제로 해결 방안 역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찾아가야 한다.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통해 미래 준비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통해 풀어갔다. 논쟁과 합의의 역사적 흐름은 정부와 시민사회에 대한 상호신뢰를 쌓았고, 이러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새로운 도전에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힘이 되었다.
스웨덴의 경우 19세기에 이미 국가적 과제에 대해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함께 연구하는 국가연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또한 이 위원회의 정책대안에 대해 단체와 전문가, 국민에게 의견을 구하는 청문제도도 자리를 잡았다. 1932년에 복지는 비용인가 투자인가에 대한 논쟁을 거치며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 즉 사회보장이 곧 경제성장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정착했다. 1934년 뮈드달 부부가 인구문제를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기한 후, 노동, 산업, 교육, 주택, 복지, 조세, 행정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하는 연구작업(미래정책연구; future policy studies)을 시작했다. 또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둘러싼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논쟁, 1950년대 이후 강한 사회(strong society) 노선과 1980년대 ‘제3의 길’ 노선 등을 둘러싼 논쟁 등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적 사안에 대한 정책기조는 유지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정당과 전문가, 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연금개혁위원회, 미래위원회 등은 미래를 내다보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사회 문화가 저출산, 고령화 등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도전에 현명하게 응전하는 저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발적 시민교육을 통해 쌓인 사회적 역량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사회문화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 스웨덴의 경우 180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 자유교회운동, 금주운동이 민중운동의 흐름을 형성하였고, 민중운동은 학습과 교육을 중시하였다. 이는 당시 엘리트 중심의 교육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시민이 자발적, 독립적으로 학습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갔고, 결국 국가가 정책으로 받아들여 정부가 시민교육(Folkbildning)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제도가 형성되었다. 시민교육은 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기에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시민 교육·학습은 토론과 참여를 중시하여 진행되었고, 이러한 활동의 축적이 소통과 협치를 이루는 힘이 되었다고 본다.
연수단이 방문한 스웨덴 성인시민교육위원회(National Council of Adult Education)는 153개의 시민대학(folk high school)과 10개의 스터디연맹(study association)을 지원한다. 위원회는 정부로부터 재정을 받아 지원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다. 교육은 특정 분야에 집중하지 않고 시민이 원하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토론과 문제의식, 주관적 활동을 중시한다. 참고로 10개의 스터디연맹에는 300여개의 스터디그룹이 있고, 시민들은 그 산하에 스터디 서클을 운영한다. 1년에 280,000여개의 서클이 운영되고, 약 100만 명이 참여를 한다. 또한 이들이 시행하는 강좌, 강연, 문화행사는 연간 30,000여건이 되며, 참가하는 시민은 1,6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스웨덴 인구가 950여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정규교육 과정이 무료일 뿐만 아니라 학생 수당과 대학생 수당이 지급되는 사회, 성인이 되면 누구나 시민대학과 스터디 서클에서 토론하며 학습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하는 제도와 정책, 문화는 이처럼 학습하는 시민의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연수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완전고용, 보편적 복지라는 북유럽 모델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광범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듯이 이들 사회 역시 난민 증가, 노동인구의 감소, 고령화, 복지의 시장화, 테러 등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학습하는 시민이 정부와 함께 미래를 준비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한다.
- 글 : 문성근(본부 정책기획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