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지난 10월 17일 저녁 흥사단 시민교육강좌 <한국 근현대사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주제의 세 번째 강의 ‘위대한 민주화운동, 왜 절반만 성공했는가?’ 라는 제목으로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 관한 부분에 많은 저서와 연구결과물을 만드신 분이라 강의 전부터 많은 기대를 갖게 하였다. 마침 나는 올해 출간된 그의 저서 「대한민국은 왜?」도 읽었던 터라 많은 부분에서 배울 것이 많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김 교수는 먼저 민주주의의 개념을 묘사하며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에 비유하였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을 향해 나가면서도 계속하여 후퇴하는 현상을 그는 위와 같이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지난 1987년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생과 기독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현실 기득권과 연루되지 않은 자들이었고, 기독인들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하여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민주화 운동이 가능했다고 보았다. 당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장준하, 리영희와 같은 인물들은 모두 월남한 자들이라며 예를 들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시위하고 청원하는 방식, 즉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전통이 현재까지 계승되는 나라는 우리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실제로 197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수감된 수형자의 70%가량은 모두 학생과 청년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정치는 교육받은 자들만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유교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반면 그는 바로 이러한 학생운동의 전통에서 우리 민주화운동의 한계성을 명확히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민주화 이후 대안세력들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물적토대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았다. 학생들이 기성의 권력을 물리치더라도 대안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4.19 이후 박정희, 10.26 이후 전두환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결국 그들 학생들의 진보성은 공부에서 나온 것이지 경험에서 나온 소산은 아닐 것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세력은 노조결성을 통한 사회운동으로 나아갔지만 사내 조합원들의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회 대안세력으로서의 힘을 키워나가지 못했다고 보았다. 3당 합당은 DJ-YS의 민주화의 실패로 귀결되고, 1997년 IMF이후 민주화 세력은 반공보수와 신자유주의적 신보수들의 등장과 함께 그 힘이 약화되었다고 한다. 1997년 어렵게 집권한 김대중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였고, 노무현은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보수화, 시민운동 세력의 약화, 제1당야당의 무력화와 진보정당의 존재감 상실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던 배경이 되었다고 보았다.
시민운동세력의 힘으로 DJ, YS가 국회에 진출했지만 정작 그들은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했을 뿐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 군사정부가 탄생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이후 언론개혁, 검찰개혁에 실패했고,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실패한 것을 중요한 실수로 꼽았다. 2000년대 이후 학생운동권이 정치권에 편입되어 기성정치권에 흡수되어버린 점도 비판했다. 지역풀뿌리 단체들은 관변단체에 압도되어 스스로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었고 그들을 대변해줄 대표자도 선거에서 당선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대선을 예로 들며 ‘불평등과 빈곤’이 발생하면 얼마든지 민주주의는 후퇴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극우주의자인 공화당 트럼프 후보는 백인 하층민들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다고 한다. 과거 클링턴 시대의 산물인 NATFA협정으로 미국 내 제조공장들이 멕시코 등 남미국가로 급속히 이전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많은 노동자들은 민주당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트럼프와 같은 극우주의 대권후보를 탄생시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요즘 미국인들은 스스로의 먹고사는 문제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이러한 성향이 현재의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이는 마치 과거 경제공황 이후 독일 나찌당, 히틀러의 등장과도 유사하고 과거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독한 가난’에 해방되고자 박정희 정권을 탄생시킨 배경과도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운동이 아래로부터의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은 1950년대부터 여러 독서클럽과 도서관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여러 싱크탱크과 독서클럽들을 만들어 우리가 공부하여 지역사회가 필요한 정책을 직접 제시하는 풀뿌리 운동이 바로 우리사회를 바꾸고 민주화를 이루는 지름길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마을기업과 풀뿌리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특별히 내년 대선투표에서 언론에 속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인물 위주의 선거홍보에 현혹되지 말고 철저한 정책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열흘이 지나지 않아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마치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초유의 국정문란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큰 상실과 자괴감이 엄습해왔다. 진정으로 그것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었다. 지난날 1987년의 민주화조차도 허구였던 것인지 되묻고 싶었다. 다시 우리는 과거에서 돌아와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민주화는 늘 용기있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권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심장을 지닌 자만이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뜨거운 가슴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이 아픈 시대를 품고 나가자. 그래야만 미래에도 우리의 희망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 : 이 장 한(수강생, 동국대학교 대학원 북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