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박만규(흥사단 이사장)
편집자가 이사장 재임 3년을 돌아보는 글을 써 달라고 요청해 왔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망설였지만, 지금까지의 관례라고 했다. 왜 아무런 소회마저 없겠는가. 그러자고 했다.
2019년 8월 말에 36년 간의 전남대 교수직을 마감하였다. 흥사단 이사장을 하고 싶었다. 오래 간직해온 목표가 있었다. 마침 그 해 말 선거가 있었고 고맙게도 여러 단우들의 기대와 지지가 있었다.
먼저, 우리 단을 환골탈태 시키고 싶었다. 지난 20세기의 기초와 준비 단체 흥사단을 21세기형 실천 단체 흥사단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공주의 사회개혁운동’과 ‘애기애타 행복실천운동’을 펼치는 운동조직으로 혁신하고 싶었다.
기초와 준비의 흥사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한 세기 전 도산선생께서는 ‘기초-준비-운동’이라는 일련의 연속되는 민족운동 청사진 속에서 가장 기초 단계의 청년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청년학우회와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흥사단을 통해 성장한 그 인재들이 각 방면 힘의 축적(=인재와 재정)이라는 준비 단계를 거쳐, 독립전쟁과 공화국가 수립(=독립전쟁, 신정체조직) 및 나아가 살기 좋은 나라 건설(=조국증진)이라는 운동 단계가 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능력 있는 근대 시민들이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던 100년 전의 창단 시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가까운 고학력 사회로 매년 수많은 전문 인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인재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 공권력도 기업 자본력도 없는 순수 민간단체의 하나인 우리 흥사단이 여전히 한 세기 전의 무실·역행·충의·용감의 4대 정신을 구호로 기초 단계의 청년인재 양성을 외치고 교육과 산업의 실력 배양에 힘쓰자는 것은, 뜻은 가상하나 시대착오다.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는 시민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실천하고 활동해야 할 때다.
무엇을 실천하고 운동할까? ‘좋은 사회’를 만들고 ‘좋은 인생’을 가꾸는 일이다. ‘좋은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자유, 평등, 평화, 인권, 복지 등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발전 시켜온 보편적 가치들이 살아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도산선생께서 이미 100년 전에 대공주의를 통해 그런 좋은 사회의 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 속에서 함께 잘살 수 있는 복스러운 대공주의 사회가 그것이다. 불평등이 심각해진 우리 사회를 대공주의 사회로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었다. 물론 우리의 특수한 과제인 남북 관계의 평화로운 해결은 가장 큰 이슈다.
‘좋은 인생’은 어떤 삶인가? 개인별 성향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겠으나 대체로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속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행복한 삶에는 사회적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각자의 내면도 동시에 중요하다. 역시 도산선생께서는 ‘애기애타’라는 행복 인생의 비결을 제시하셨다. 스스로를 잘 가꾸고(=수련) 이웃을 아끼고 챙기는(=봉사) 삶이 ‘좋은 인생’이라고 밝혀 주셨다.
나는 우리 흥사단이 ‘좋은 사회,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공주의 사회개혁운동’ 혹은 ‘대공주의 공화국운동’에 앞장서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애기애타 행복실천운동’을 일상화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21세기 한국사회의 혁명적 대변화에 조응하여 제2의 창단에 버금가는 대혁신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뜻을 오래전부터 글을 통해 또 임원수련회 등에서 제안해 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이사장이 돼서 직접 앞장서 추진하고 싶었다.
동시에 도산선생의 진면목을 우리 사회에 널리 드러내고 싶었다. 도산선생은 단지 ‘고상한 인격을 가진 독립운동 지도자 중의 한 분’이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혁명 곧 국권광복과 조국증진의 비전을 제시한 최고지도자이자 대한민국의 국부야말로 진정한 도산선생의 모습이다. 인격, 업적, 사상의 세 측면에서 우리 국민 특히 청년들에게 완벽한 롤모델임을 알리고 싶었다. 나아가 아직 미처 다 실현되지 못한 그의 원대한 뜻을 오늘에 되살리는 불씨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도산=국부 캠페인’과 함께 뜻을 같이할 수 있는 각계 오피니언리더들을 모셔서 예전 영국의 페비안협회와 같은 ‘대공주의자협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뜻했던 바를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는 자괴감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물론 이상과 현실, 생각과 실행이 그대로 온전히 일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괴리가 너무 컸다. 역량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굳이 변명하자면 의욕이 충천하던 취임 바로 직후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집회가 셧다운되고 더하여 점차 재정난으로 닥쳐왔다. 안으로는 투명운동본부 사태와 관련되어 뜻밖의 법적 다툼이 시작되고 일부 불만 단우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내내 발목을 잡았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시달렸는데 이를 조기에 극복해 내지 못한 것도 결국 내 책임이었다.
그나마 이제 많은 단우들이 대공주의와 애기애타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점은 감사한 일이다. 우리 단 혁신의 정신적 밑바탕이나마 마련되었다고 할까. 금쪽같이 중요한 시기에 단 운영을 책임졌던 이사장으로서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고백이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큰 소득(?)이 있었다. 우리 단 혁신과 함께 제대로 된 도산전기를 쓰는 일을 또 하나의 소명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평생을 운동가로 그것도 수많은 조직을 만들고 운영한 도산선생을 책상머리 서생에 불과한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늘 절감해 왔다. 엄혹한 시기에 국내외를 망라해 민족운동을 주도해온 도산선생에 비하면 평온한 시기 단 운영은 아주 미미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경험이라도 가져본 것은 나에게는 아주 소중하였다. 하고 싶은 일이 아무리 간절해도 여건이 허락되지 않을 때, 단합과 통일이 절실한데 이런저런 작은 명분과 소신만을 끝까지 고집하는 동지들 앞에서 고뇌했던 도산선생의 숨결이 훨씬 더 생생히 느껴져 온다. 이제는 감히 도산선생을 한번 그려봐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단의 재정적 곤란과 특히 지방 지부들의 어려움을 뻔히 보면서 이사장직을 마치는 심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쨌든 흥사단 대혁신의 과업은 이제 나의 직접적인 권한과 책임 밖의 일이 되고 있다. 대신 가능한 범위에서 도산선생의 참모습을 알리는 일에 일조하겠다는 다짐으로 아쉬움과 송구함을 애써 떨쳐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