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회장
2022년 10월 4일은 10·4 선언 15년째 되는 날이다. 10·4 선언(정식 명칭: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과 개최한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서명한 남북공동선언을 칭하는 것이다.
이 선언은 모두 8개항으로 크게 ① 6·15 공동선언의 적극 구현을 비롯,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이행, ② 백두산 관광 추진 등 경제협력 사업 활성화와 ③ 이산가족 상봉 및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 등으로 나뉜다. 그 외에도 ④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 강화도 포함되어 있다. 항목별 제시된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남북한이 가야 할 방향과 길을 총망라하여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에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과 같은 남북합의가 있었지만, 모 두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선언이 되고 말았다. 10·4 선언을 포함, 남북한 간의 선언과 합의가 지켜지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은 북한 핵문제를 들고 있다. 그렇다. 북한의 핵개발 이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 핵문제 해결에 관한 미국의 입장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그것은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이다. 핵문제 해결의 방법과 과정에 합의하는 것이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물론, 북·미간에도 핵문제 해결과 관련, 합의나 공동성명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 합의가 실천되지 않는 것은 핵문제 해결의 실제적 방법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이나 미국에는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에는 그에 상당하는 체제 안전과 함께 적대적 행위의 중단을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으로서는 핵이 자신의 체제유지에 있어 마지막 보루인데, 이에 상응하는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는 이상, 먼저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극심한 대치 상태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상황이 연출된 적도 있었다. 북한이 과감한 양보 의사를 보임으로써 핵문제 해결이 가능할 수 있었던 단계에 들어선 적도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싱가포르 회담을 거쳐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핵시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대신,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 중 민생과 관련된 여섯개 부분의 해제를 요구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영변 핵시설 해체는 서방 전문가의 참관과 확인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의를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했다. 이로써 북한 핵문제의 결정적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정상회담이 무산되고 노딜(No Deal)이 된 핵협상은 더 이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날 쌍방은 다시 핵문제 해결의 원점에 서있다. 엄밀히 말해 오히려 악화일로의 상황에 있다. 그 사이에 북한은 핵사용 법제화를 추진했으며, 한미일 당국은 북한의 도발에 선제타격을 포함, 강력한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기세다.
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열어 표면적으로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 절호의 기회를 포기했는가? 여기에는 미국의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 단된다.
첫째,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야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입은 동북아의 패권을 확보하는데 상당히 중요하다. 북한 핵은 남북 분단과 대립과 함께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지 우리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둘째,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도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남북한 적대관계의 유지는 직접적으로는 엄청난 비용의 전략무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 6위의 군사력이라는 위용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이 사들인 미국의 전략무기가 크게 일조했다. 미국 무기 구입의 세계 최대 ‘호갱’은 바로 한국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기를 팔면서도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고 압박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북한이 핵문제의 불씨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북한 핵문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가 필요
미국의 동북아 패권 유지의 그늘에서 강력한 한미동맹을 통해 안보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한국. 스스로 그런 위상을 정립하고 있는 한국은 단 한 번이라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주도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미국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한 치의 빈틈없이 미국과 공조를 해가고 있다. 남북한 사이에 10·4 선언과 같이 아무리 좋은 합의가 있어도 추동력을 가질 수가 없다. 보수정권 하에서는 더욱더 그런 성향이 강하다.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존재, 도발만 하는 존재로서 강력한 벌을 주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대화보다는 제재를 가해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 벌써 77년이다. 100년이 그리 멀지 않았다. 앞으로 23년 내 무엇인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와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10년 후 20년 후도 이 상태를 면하기 어렵다.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지만 북녘 땅은 갈 수 없는 유산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 체제와 이념의 통일은 아니라도 남북한 젊은이들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원하면 남녘과 북녘의 땅을 밟을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광활한 유라시아를 그들의 일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
북한 핵문제의 우선 해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문제 해결의 집착은 핵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북한 핵 문제는 해결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강력하고 일방적인 압박만 가해지는 것은 그렇게 해야 북한이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핵문제 해결만이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유일한 길이 아님을 인식하자.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한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음을 알자. 그것을 기필코 찾아내어 실현하자.
먼저 북한과 진정으로 대화하겠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남한 정부의 진정성을 담아라. 북한이 핵을 내려놓으면, 경제 지원하겠다는 것을 그 순서를 바꾸어 먼저 경제협력을 하고 핵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으로 하라. 경제협력이 무르익고, 가시적 성과가 나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에 들어섰을 때 핵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라. 그러면서 쌍방에게 가하는 적대적 행위는 같이 내려놓자 고하라.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면 그 방법을 찾아 소리 없이 묵묵히 하면 된다. 그야말로 대가와 조건이 없는 인도적 지원이 되게 하라. 그 과정에서 지난번 독감약 타미플루 전달 때와 같이 미국의 견제가 있다면 강력한 외교력을 동원하라. 그리고 미국을 설득하라. 이것이 우리의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미국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남북한을 위해 막아서는 되지 않는다고. 외교가 무엇인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할 방편이 아닌가. 10·4 선언 사반세기. 더 이상 지체하거나 머뭇거릴 수 없다. 생각을 바꾸고 슬기롭게 결단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