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조은상(코스모스 컨설팅 대표)
2022년 6월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6월은 매우 특별하다. 6·10 만세운동, 6·25 전쟁,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 등이 떠오른다. 지난 100여 년 동안 6월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왔으며 나아가 우리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120여 년 전인 1910년은 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망하여 온 나라가 일본의 압제하에서 시달리던 때이다. 의병의 뒤를 이어 독립의군부, 대한광복회, 조선국민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독립운동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이 이어지자 만주, 연해주, 미주 등의 교포가 밀집한 지역에서 해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와 학생 단체가 주도하여 독립 선언서를 만들고 독립 선언식과 시위운동을 시작으로 불이 붙은 대한 독립 만세운동은 일제에게 한민족의 평화적인 저항 독립 정신을 보여주었다.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한반도 전역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이다.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 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중 사망자가 900여 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으로 나오는데 그 영향으로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26년,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장례일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국내의 천도교와 조선공산당, 조선노농총동맹 등 다양한 세력뿐 아니라 해외의 조선 공산당 임시 상해부, 임시정부의 일부 세력, 임시정부의 외곽 조직인 의용대 그리고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다같이 연대하여 6월 10일 만세 시위운동을 하였다. 6·10 만세운동을 통해 다양한 이념적 편향과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교육과 관련해서는 국가경비에 의한 의무교육과 직업교육 실시, 식민지 노예화 교육의 소멸, 보통교육의 의무교육으로 전환, 보통학교 교육용어를 조선어로 사용, 학생집회의 자유 보장, 조선인 중심의 대학 운영, 일본인 교원 배척,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스스로 등이 주장된 민족독립운동이다.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여 일제가 갑작스럽게 패망하면서 다가온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한반도는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인하여 남북한으로 분단되었으며 이로 인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본주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공산주의의 이념적 대결은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한민족끼리의 상쟁과 더불어 국제적인 전쟁을 발생시켰다.
3년에 걸친 전쟁으로 전 국토와 기반시설이 파괴되었으며 3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피를 나눈 형제끼리 죽이고, 함께 살아가던 이웃끼리 죽인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아 남북간에는 적대시하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이념을 근거로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세력이 남아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협정과 남북 정상간의 회담을 통하여 평화를 약속하였지만, 아직도 서로를 적으로 보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적대감과 분노를 바탕으로 한 극우 정치세력은 남북평화로 가는 여정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분단이란 세계사적인 슬픈 현실을 바탕으로 독재 체제에 신음하던 대한민국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건은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이다. 1980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쟁취하였다. 6·10 대회와 명동성당에서의 농성투쟁, 부산, 대전의 대규모 시위, 그리고 광주, 전주에서의 대규모 시위에는 학생들이 선두를 지켰지만 넥타이 부대, 할아버지, 할머니, 중학생과 어린아이도 함께 구호를 따라 외치고 운동가를 부르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광복 당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던 대한민국이 70여 년이 지난 2022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어 유엔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선진국이 되었다. 이승만의 독재를 타도하고 군부 독재를 벗어나 민주국가로 변화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통합된 나라로 가는 평화의 과제가 가장 중요함은 온 나라가 알고 있다.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것인가?
평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평화는 로또가 아니며 대박이 아니다.
평화는 닫혀진 문을 한 번에 열 수 있는 황금 열쇠가 아니다.
그러기에 평화는 집짓기에 비유된다.
집을 짓기 위해 터전을 마련해야 하고, 기초를 만들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든다. 거실과 방, 부엌 그리고 화장실을 설계도에 따라 내부 시공을 하면 집의 모습이 갖추어진다. 지붕도 만들고 집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면서 정원을 예쁘게 조성하면 내가 꿈꾸는 집이 탄생한다.
평화는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 나오는 공산품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견뎌내며 치유하면서
미래의 희망과 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가꾸어 나가는 정원과 같다.
잠시라도 가만두면 잡초가 무성하여
아름다운 정원에 풀이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란다.
매일 잡초가 싹을 틔울 때 없애 주어야
정원을 관리하기가 수월해진다.
평화는 텃밭을 가꾸는 것과 같다.
평화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의 기운을 돋기 위해 퇴비를 잘 주고
새싹이 잘 돋아 자라도록 물도 자주 뿌리고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충제를 뿌려야
평화의 싹이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평화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
평화의 정원에는 희망, 존중, 포용 그리고 행복이란 나무가
뿌리를 잘 내려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평화의 정원에는 치유, 교류, 재건 그리고 배움이란 공간이 있어서
분단과 갈등,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치유받고 서로 교류하며
집과 휴게실과 만남의 장소를 지으며 함께 공부한다.
평화의 정원에는 반전 평화와 유비무환이란 울타리가 있다.
그리고 평화의 정원에는 침묵과 지혜가 넘쳐나며 평화 일꾼을 키운다.
멀찍이 서서 평화의 집과 정원을 바라보면 행복하다.
평화의 정원에 들어오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평화는 집짓기이고 집 짓기가 바로 평화이다.
우리 모두 평화의 집짓기를 통해 한민족 미완의 과제인 평화를 가꾸어 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