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독립운동가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흥사단을 창립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평생 직업은 독립운동가였다.
도산은 19세 때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였다. 그는 훌륭한 사상가이자 뛰어난 조직가로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1907)를 결성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청년학우회(1909년), 대한인국민회(1912년), 흥사단(1913), 한국독립당(1930년)을 조직하였다. 또한, 1919년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지내면서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대공주의(大公主義)에 따라 좌우 합작운동에 매진하였다.
도산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커우공원 폭탄 사건’의 여파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피체되어 다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혹독한 수감 생활의 영향으로 도산은 1938년 3월 10일에 서거하기까지 일본에 강탈당한 나라를 되찾고 부강한 독립국을 건설한다는 목표로 평생을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이러한 도산의 독립운동과 사상이 모여져 창립된 단체가 흥사단(興士團, Young Korean Academy)이다. 흥사단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을 이끌 인물을 기르기 위해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3년에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이다. 창립 이후, 흥사단 단우들은 도산과 함께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대한은 1945년 8월에 광복을 맞이했다.
200여 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흥사단은 진정한 8월의 광복을 이루기 위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운동에 오늘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