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박만규(이사장)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유력 후보 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박빙의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우선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낙선자에게는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드린다.
근래 우리 사회의 분열과 진영 간 대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넓은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어느 수준인지 나로서는 잘 가늠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자 부정 선거를 이유로 불복했고, 그 지지자 중 일부는 의사당에 난입해 점령하는 일조차 있었다. 반대로 일본에서의 집권자 교체는 자민당 내 몇 개 파벌의 보스들이 조용히 담합해 결정되곤 한다.
우리의 경우 직선제 이후 여야 간에 별다른 후유증 없이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왔으니 크게 보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번에도 간발의 차이로 떨어진 차점 낙선자가 깨끗이 승복해 깔끔하게 잘 마무리되었다. 이제 우리가 오랫동안 피땀으로 가꿔온 민주주의의 기본 틀에 대해서 걱정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보다 나에게는 ‘이번 선거 국면에서 부각된 이슈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관심사였다. 유력 후보들과 그 가족의 도덕성 문제는 어차피 본질은 아니고, 오래전부터 대중선동용으로 쓰여온 친일, 친미, 수꼴 혹은 종북, 종중, 좌빨 등의 감성적이고 저급한 용어들도, 어차피 곧 소멸해 갈 퇴영적인 인식의 잔재들이므로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몇 가지 실존적 관심사들이 무성하게 논란이 되었지만, 나는 무엇보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데 주목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권 후보 진영에서 내건 ‘대한민국의 대전환’이라는 구호였다. 외형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최근 국제적으로 널리 퍼졌다. 그리고 UN무역개발기구를 통해서는 공식적으로 인증되었다.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각 분야에서 우리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성취를 이루어 오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 사회에는 일상의 삶에서 여유를 누리며 만족해하는 사람보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가난한 노인들, 힘겨운 중년들, 일자리 없는 청년들, 맹목적 경쟁교육에 내몰리는 청소년들 대다수가 고단하다. 국가 전체로 성취는 컸으나 개인적으로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 뭔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함께 커져 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대선에서 유력 정당의 집약적 구호로 표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무엇보다 눈앞의 한 표가 소중한 선거 국면의 특성상 각종 네거티브 선전과 자극적인 포퓰리즘성 공약 탓에, 그 구호 자체의 주목도나 득표 효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유력 후보가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필요하며, 일대 전환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내보인 것은 나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이 어제오늘에 싹튼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제기되어 왔었는데, 드디어 우리 사회 주류의 유력 정당과 후보 진영에서 대선 캠페인의 메인 타이틀로 내걸게 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거시적으로 보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들을 이미 100년 전에 예견하고 그 해법까지 제시한 분이 있었다.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대공주의(大公主義) 정신이다. 도산의 대공주의는 독립을 쟁취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에서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데 있었다. 우리 근현대 역사를 돌아보면 대한민국을 디자인하고 실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분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국권 회복을 위해 1907년에 결성한 신민회를 포함해 일제 강점기의 대한인국민회와 임시정부를 이끈 도산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신적·실질적 국부라 할 수 있다.
도산 선생은 40대까지는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모범적 공화국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 50세 무렵부터는 좌우 독립운동계의 단합이라는 현실적 필요성과 더불어 동지들과의 사상적 공부와 토론 끝에,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불평등이라는 근원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심화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잘 조화되는 사회사상을 갖게 되었고 이를 대공주의라 이름 지었다. 도산 선생의 대공주의는 다시 말해, 오늘날 ‘대한민국 대전환론’의 사상적 원조가 되는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듯이 현재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양대 세력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다. 두 당이 지향하는 점을 단순화해보면, 한 세대 이상에 걸친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지속 확장해 가려는 국민의힘과 이제는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더불어민주당이 경쟁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대선은 결과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승리하였다. 당분간은 한미일 동맹의 강화 속에 한 세대 이상 지속해온 기득권층 위주의 길을 답습해 가려 할 것이다. 그러다 곧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정세의 구도에 적응해야 하고, 국내적으로는 여소야대라는 큰 제약과 국민적 격차 해소 요구에 조응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어쨌든 일단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니 새 당선자와 여당이 주어진 임기 동안 국가 안전과 민생 안정에 큰 차질 없이 역할을 다하기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일찍이 도산 선생께서 제시한 대공주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한국사회 대전환론’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고 본다. 단지 그것이 점진적으로 다가올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극적으로 전면화될 것인지는 새 정부의 국정 역량과 국민적 요구의 정도에 따라 가변적일 것이다.
끝으로 대선 이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 방향은 윤석열 당선자가 내건 ‘통합의 대한민국’이다. 정부, 시민사회, 기업, 공공기관이 서로 존중하며 공공의 선을 추구하도록 하는 대공주의 취지가, 국정 운영에 반영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