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문화유산답사회의 운영1)
1) 제96차 흥사단대회 중에 개최한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1위를 수상한 제주지부의 ‘제주문화유산답사회’를 소개합니다. 흥사단 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이 사업은 다른 지부에서도 귀감이 될 것입니다. - 편집자 주
1. 시민에게 다가서기 위하여
제주지부는 1968년 창립 당시부터 단우들 대부분이 고등학교 교사였던 관계로 고등학교, 대학교 아카데미 지도를 단활동의 중심에 두어왔다. 이런 상황이 1990년대초까지 이어졌고 그만큼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흥사단이 이념단체로만 남지 않고 시민단체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생긴 것이 1993년경이었다. 그래서 당시 권재효 사무국장 체제에서 시민을 위한 활동으로 마련한 것이 제주역사기행반과 오름기행반이었다. 단우가 중심적으로 참가하면서 점차적으로 시민들에게 문을 개방하자는 게 당시의 방침이었다.
2. 첫발
두 기행반이 1994년 2월에 합동으로 랑쉬마을터와 랑쉬오름을 답사하면서 제주역사기행반의 첫발을 내디뎠다. 15명 정도가 참가했는데 단우 아닌 시민은 딱 한 사람이었다.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없는 예산을 쪼개어 신문에 광고도 냈다. 그러나 처음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둘째, 셋째, 넷째 기행에 참여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심지어 4차 기행에는 안내자인 필자와 사무국장 권재효 단우, 아직 초등학교도 안 다니는 그 아들, 시민 한 사람 이렇게 넷이서 한라산 중턱에 있는 ‘이덕구산전’이라는 곳을 답사할 때에는 이걸 더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실망감이 엄청 밀려왔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 보자. 계속 이 수준이면 그만두는 거고….’ 하면서 마음을 추스렸는데 다음 기행부터는 한두 사람 점차 늘어났다. 단우보다는 일반 시민의 참여가 늘어가는 게 희망적이었다. 어느 직장에서는 단체로 약 2년을 참여하기도 하면서 시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3. 안내자 양성과 참가자 증가
당시에 역사기행 안내를 필자가 맡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제주도의 역사 유적지를 아는 곳이 30곳도 안 되는 상태에서 안내를 하겠다고 덤볐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김성보 단우가 적극적으로 도와 주어서 이곳저곳을 계속 사전답사하여 다음 달 또 다음 달을 준비해 나아갔다. 서호동 ‘시오름주둔소’ 라고 4·3사건 당시 토벌대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소규모의 성을 찾아 나섰다가 산중에서 밤 9시가 넘어서도 찾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에는 강윤정 단우(당시에는 단우가 아니었다)가 함께 해 주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강 단우는 거의 모든 일요일을 필자와 함께 사전답사에 나섰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결국은 입단도 하였다.
필자가 섬 학교인 추자도에 발령을 받게 되자 안내를 누가 맡을 것이냐를 가지고 고민했는데 김성보, 강윤정, 조지연 단우가 나섰다. 2년 동안만 버티면 될텐데 그 동안은 해 보겠다고 하는 결의! 그 때의 고마운 심정은 지금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동안 모은 자료를 세 사람에게 넘기고 맡겼는데 세 사람이 집단체제로 답사회를 이끌어갔다. 필자가 하던 때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까지 해 주었다. 복사 몇 장 해서 나누어 주던 답사 자료를 아예 6개월치를 묶어 책으로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6개월 단위로 회원을 모집하여 안정적인 운영을 하게 되었다. 역시 나중난 뿔이 ….
2001년에는 다시 필자가 안내자로 복귀했다. 그 후 2005년부터는 김성보, 조지연 단우가 한 달씩 안내를 맡아 주었고, 이어서 다음해부터는 필자가 안내를 맡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 동안 강경희, 강성기, 고정우, 김선희, 김성보, 백민자, 조광석, 조지연, 진선일 단우와 비단우인 김태희, 양성희씨가 안내자로 데뷔하였다. 2010년에는 필자가 한 번만 맡고 다른 회원들이 나머지를 다 맡는다.
참가하는 회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9년 한 해 동안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의 수가 80명에 이른다. 이렇게 꾸준히 늘어가는 데에는 인터넷의 힘이 꽤 컸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2003년부터 ‘고영철의 역사교실’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에 조지연 단우가 Daum에 ‘제주문화유산답사회’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에는 회원수가 180명에 이르러 이제는 답사광고까지 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2007년 문을 연 제주지부 홈페이지에도 공지하고 있다. 매달 둘째 일요일로 답사일이 고정되어 있고 참가자는 월평균 20명을 넘고 있다. 답사는 구좌읍, 성산읍, 남원읍, … 이렇게 매달마다 지역을 순회하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방어유적, 신당, 4·3사건, 일본군사시설, 한국전쟁, 옹기 가마, 포구, 유배문화, 탐라순력도, 주제별로 다양하게 진행하였다.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답사를 통하여 발견하게 되는 문화재 훼손, 멸실, 도난 사례 등을 문화재 당국이나 언론사에 제보함으로써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4. 높아진 흥사단의 위상과 앞으로의 과제
제주도에서는 ‘문화유산답사’ 하면 ‘제주흥사단(제주지부)’이라는 명성이 났다. 각종 기관, 단체, 사기업 등에서 흥사단 사무실로 전화하여 안내를 요청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안내자가 충분히 양성되었으므로 날짜에 맞는 안내자를 골라 내보낼 수 있어서 수요에 충당(?)하는 상황이다. 전국 각지의 흥사단 지부에서 제주도 기행을 할 때 필요하면 안내자를 배치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단 내에서는 어린이흥사단이나 고등학생 아카데미 활동에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넣어 진행하기도 하면서 답사회의 활동이 단 활동으로 연계되고 있다. 답사회를 통하여 입단한 단우도 2008~2009년에 13명이나 된다.
지난 8월에는 제주도에 후손이 살지 않아 벌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투사 백응선의 묘를 답사회 회원들이 가서 벌초 봉사를 했는데 앞으로 이런 분들을 찾아내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벌여 나아갈 것이다.
2009년도 제96차 흥사단 전국단대회의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제주지부 문화유산 답사회의 운영”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는 앞으로도 흥사단 운동이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지속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제주문화유산답사회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바탕으로 흥사단 운동에서 제주지부가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한 축을 지속적으로 담당하게 될 것이다.
2009년 연말에는 10여 년 간 본 제주문화유산답사회를 통하여 실력을 배양한 안내자를 중심으로 제주지부 주관의 ‘제주문화유산 해설사’를 배출하게 된다. 이 사업은 흥사단이사장 명의의 인증서를 수여하는 해설사 배출로서, 관주도로 육성된 제주도 해설사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제주 문화 해설의 큰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우리 제주문화유산답사회에서는 그 동안 축적된 자료를 집약하는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글 : 제주지부 지부장 고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