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50년사」 및 「흥사단운동70년사」 분석·평가 세미나가 11월 27일 오후 7시 본부 3층 강당에서 30여 명의 단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지난 10월 24일 제96차 흥사단대회에서 발표된 흥사단 창립10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흥사단100년사 편찬사업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개최된 이번 세미나는 공개적으로 마련된 첫 번째 공론의 장이었는데, 2013년에 발간하는 흥사단 100년사의 집필방향 설정, 사료수집, 편집제작 등 향후 추진할 100년사 사업 전반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고 밑그림을 그려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세미나는 100년사위원회 위원장 박의수 교수(강남대학교)의 사회로, 이명화 박사(독립기념관)와 박만규 교수(전남대학교)의 발제에 이어 이만근 대표(이만근인쇄편집회사), 이규태 박사(전 한일장신대학교 교수), 안재환 사무처장(도산아카데미), 박화만 상임위원(흥사단100년사위원회)의 토론 및 참석자들의 질의응답 순서로 진행되었다.
먼저 발제를 한 이명화 박사는 흥사단을 ‘역사적 전통과 독특한 가치와 문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단체’로 정의하고 「흥사단50년사」를 중심으로 분석, 평가하였다. 그는 50년사가 최남선, 이광수, 주요한 등 국내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의 기억과 저술에 주로 의존하여 흥사단 본령의 정치운동 불관여 원칙 고수를 지나치게 강조한 인상이 짙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동우회 활동과 일부 단우들의 일제 전향 등에 대한 진솔한 평가, 원동위원부의 폭넓은 활동과 해방 전후 단우들의 행보 등에 대한 규명을 흥사단의 정체성 해명에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그는 흥사단100년사에서는 흥사단이 기존의 ‘부르조아 민족주의자들의 집합’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야 하며, 다양한 사상과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활동한 단우들이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열린 조직의 전통을 재조명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일제의 분열공작에 의해 자행된 외부로부터의 왜곡된 평가와 파쟁, 혼돈, 정쟁의 시대에 흥사단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 등도 치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흥사단이 민주적 조직운영과 훈련으로 배출한 많은 단우들의 활약상과 각 지부와 미주 흥사단의 활동 등을 조명하고, 현재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방대한 흥사단관련 자료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두 번째로 발제를 한 박만규 교수는 본 발제가 유용한 100년사 편찬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도록 민족운동사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먼저 「흥사단50년사」는 흥사단 운동을 시작부터 지나치게 왜소하게 그렸으며, 흥사단의 설립목적에 대한 이해가 심층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이는 주요 증언을 제공했던 인물들의 인식이 도산 선생의 전체 민족운동 구상은 물론 흥사단 창립의 진의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흥사단 창립 초기의 역사도 일개 수양단이 ‘부산하게’ 움직인 내부적인 모습만 보인다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독립운동계 전체를 아우르는 좀 더 넓은 지평 속에서, 도산 선생이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며 민족운동을 주도하던 상황을 감안한 부문운동으로서의 흥사단의 위상과 역할을 해석하는 안목이 필요하고, 동우회 해산 결의 및 해체 이후 민족사의 격동기에 ‘핵심 단우들이 걸어온 행적에 대한 비판적, 반성적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흥사단운동70년사」는 1960년대부터 대두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흥사단의 역사인식이 민주화에 치중했던 아카데미 세대들과는 간극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으나, 당시 대학생 민주화운동의 큰 맥을 형성했던 아카데미운동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 평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흥사단100년사는 지나온 사실의 정확한 기록이어야 하고, 흥사단의 창단 목적이 도산 선생의 민족운동 구상 속에서 온전히 드러나야 하며, 앞으로의 전망과 미래 비전이 저절로 우러나오도록 편찬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토론자들은 보다 나은 100년사 편찬을 위해 기존 단사의 아쉬운 점을 보완할 것을 제안했다.
먼저 이만근 사장은 흥사단은 정체성과 관련된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1세대 단우들이 공론을 주도해 온 전통을 고려하고, 아카데미 운동 출범 직전에 활약한 ‘3세대’ 단우들의 활동을 반영해야 하며, 많은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객관성을 확보하여 주관적 사관으로 인해 흥사단의 정체성이 잘못 인식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규태 박사는 흥사단의 역사가 사회적인 면과 단 자체 내부의 역사라는 두 차원으로 다르게 정리되어야 하지만 민족운동 단체로서의 전통을 계승하는 흥사단의 미래 비전이 민족 통일과 같은 과제에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100년사가 편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재환 처장은 「흥사단운동70년사」를 편찬할 당시 아카데미 운동에 진통이 많아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어려웠으며 자료부족, 열악한 실무여건, 집필자의 중도교체 등으로 인해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았으나 100년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풍부한 자료와 연구 자료를 근거로 객관적 편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화만 상임위원은 70년사가 편찬 당시 어려운 여건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구성되었으나 아카데미 운동의 실체적인 역사가 누락된 점과 프레임의 일관성 결여, 시각적 요소의 부족 등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성공적인 100년사 편찬을 위하여 포괄성, 객관성, 일관성, 활용성 등 네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이어서 진행된 질의응답을 통해 조항원 단우는 100년사 편찬목적과 관점을 명확히 할 것과 역사자료의 D/B화를 실현시키고 다양한 방면에서 이룩한 흥사단의 선도적 역할을 부각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김용국 위원장(추진위원회) 100년사위원회와 비전위원회가 서로 활동이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 글 : 흥사단100년사위원회 상임위원 박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