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신종플루 치료제 50만명분이 북측에 전달됐다. 우리정부가 인도적 지원 물자를 직접 북측에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추가 제공될 10억원 상당의 손세정제를 포함하면 178억원 상당의 대규모 지원인 셈이다. 지난 8일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사 보즈워스가 방북한 날과 타미플루 지원 발표시점이 일치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급진전되는 북미관계에 놀라 신종플루 지원방침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시 특별조문단을 파견했을 때나 최근 금강산 개성관광재개 등을 제의해 왔을때와는 사뭇 다른 대응을 한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진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무시해 왔던 정부가 북미간 친서 전달이 확인되고, 한반도 평화포럼이 가시권에 접어들 것으로 판단하여 유연성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보즈워스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16일 위싱턴에서 개최한 브리핑에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첫 번째 과제중 하나는 비핵화, 새 평화체제 평화협정, 에너지 경제지원, 관계정상화, 동북아 안보 질서 구축 등 요소들의 전반적인 순서(sequencing) 문제가 될 것", "우리는 이 모든 사안들에 대해 논의했고, 특히 평화협정 협상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또 "남북한, 미국, 중국 4개국이 평화협정 협상에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평화포럼의 '당사자' 문제도 정리해 발표했다.
이는 9.19공동성명 4항에 명시되어 있는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였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는 내용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북미간에 갈등을 빚었던 “북미간 관계정상화”와 “정전상태의 평화상태로 전환”에 관한 “순서(sequencing)문제”와 “평화협정 협상의 선결조건 문제”에 대해서 '6자회담-평화포럼 '병행'이라는 북미합의안을 발표했다. 이는 국제협력과 다자간 외교에 바탕을 둔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오바마가 북미 양자대화로 북핵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6자회담을 통해 다자간회담을 복원하는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 북한의 입장을 수용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는(핵억지력 주장) 근본적인 안보위협요인(정전협정)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평화체제와 비핵화가 속도를 내면서 전개될 때, 향후 한반도 정세는 급변할 수 있다. 나아가 동북아냉전구조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 낼수 있다. 이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오바마의 정책이 구체적 실행단계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선 북핵폐기’론을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남북당국간 모든 대화의 채널을 단절시키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인도적 지원으로 통상 진행되었던 쌀 40만 톤, 비료 30만 톤의 대북지원마저도 중단함으로써 인도적지원의 순수한 정신마저 훼손하고 있다. 여기에 민간단체의 남북협력사업도 불허하여 인천항에 묶여있는 물류보관료만도 수천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북한 주민의 식량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농업분야 남북협력사업이 중단되면서 북한의 농산물 생산량에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가 부시와 같은 압박정책으로는 북핵문제를 해결 할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것처럼 우리정부는 오바마의 대북포용정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정부가 개성공단발전구상을 위한 남북공동 해외시찰단 파견, 타미플루 긴급지원등으로 북한과의 대화의 틀을 만들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금번의 4자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주도하여 복구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미관계의 속도에 맞는 남북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미국처럼 특사도 파견하고 정상회담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한다.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미국의 프로세스에 편승하여 남북간 대화채널을 구축해 놓아야, 4자회담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낼수 있으며, 평화협정체결에서 실질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한국이 아닌 미국(국제연합군)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더블어 1994년 북미제네바협약 때처럼 회담장에는 입장도 못하고 수조원에 달하는 경제지원경비만 부담하는 일이 또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워스는 오바마 친서와 관련하여 한국과 사전공유를 하지 않고 조용히 방북했다. 이것은 우리정부의 “그랜드바겐-선 비핵화론”의 일괄타결 방식이 북핵문제 해결에 유용한 정책이 아니라는 미국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북미대화를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그 어느 때 보다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정부는 타미플루를 지원할 때 보여준 것과 같은 기민하고 유연한 태도로 남북 당국간 대화채널을 조속히 복구하여야 한다. 그래서 쌀․비료등의 인도적 지원, 개성․금강산관광재개 등의 경제협력, 남북민간교류협력사업등의 민간교류를 회복해야 한다.
타미플루 지원에 대해 이례적으로 북한이 “매우 고맙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남한이 먼저 북한에게 손을 내민다면 남북관계 회복은 어렵지 않게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용단을 기대해 본다.
- 글 : 민족통일운동본부 처장 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