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경쟁의 가치가 어느새 우리사회에 지배 이데올로기화 되어가고 있다.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 보는 사회, ‘하면된다’는 80년대 이전의 구호가 아직도 귀에 익숙한 걸 떠나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사회다.
지난해 조계사 농성과정에서 읽었던 한 경제학 서적에 나온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저자는 ‘6살 먹은 자신의 아이가 무한 경쟁 사회에 편입시켜 이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하고 묻는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그 경쟁이 공정한 경쟁이 되게 하기 위한 사회와 가정의 책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 옆집에는 후배 부부가 산다. 아파트 전세 7천만원짜리, 대출은 3천만원. 그런데 문제는 두 부부가 대학원생이다. 그래서 1년 등록금이 2천만원이란다. 결국 둘 중 하나가 아닌 둘 다 학업을 중단해야 되는 지경이다. 이로 인해 많이 싸웠던 날들로 행복보다 불행의 신혼 생활을 대변한다.
물론 대학원 정도야 선택의 문제지만 대학은 이제 필수가 되었다. 그런 대학 교육뿐 아니라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초중고의 학생과 학부모의 행복은 잠시(12년이 잠시?) 저당 잡히고 만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대학을 보내면 4년이란 긴 시간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또 다시 행복은 다음으로 미루어 놓는다.
돈이 없어 치료 받지 못하는 서러움과 돈이 없어 교육 받지 못하는 서러움은 최소한 우리 사회에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에도 행복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100m 달리기를 하는 데 누구는 돈이 많아 50m 앞에서 뛰고 누구는 가난으로 50m 뒤에서 뛴다면 그 것은 공정한 룰이 아닐 지언데 우리는 그 부당함에도 그 현실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인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시절은 이미 갔다’
‘하면 된다’는 군사 문화식 구호 또한 이제 옛말이다. 사교육에 몇 백만원씩 투자하는 옆집, 옆동네 아이들과 어찌 경쟁할 수 있을까?
학교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포로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것 같다. 학벌사회의 귀결은 중고등학교의 파행을 가져온다. 그리고 수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온갖 체벌과 소지품 검사, 두발 규제와 같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범죄도 용인되도록 만든다.
이제 교육에도 행복을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교육을 바꾸는 운동을 한다는 것이 몇몇 이름 있는 단체들이 연대해서 기자회견과 캠페인 벌이면 될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운동이, 시민들과 만나서 얘기할 만큼 한가한 운동이 아니라서 우리의 교육 운동은 글렀다. 나도 그렇다. 너무 바쁘게 너무 열심히 교육운동을 하다 보니 교육에 시민이 빠져있고 학생 만날 시간이 없으며 학부모의 고통도 잘 몰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체 중심의 운동 틀에서 벗어나 나의 지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옆집 아줌마 아저씨랑, 동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아이들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 그 시작이라 생각한다. 이제 개인과 개인의 역동성 있는 연대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가칭 교육희망네트워크는 그런 취지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운동의 반성에서 출발해서 누구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교육 공공성을 이야기 하는 것,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에서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희망의 이름으로 찍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그런 운동이 되어졌으면 좋겠다. 교육의 공공성 운동은 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 될 수 있는 운동이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우리사회의 '보수적‘ 운동이다.
흥사단교육운동본부가 있으므로 해서 교육운동이 흥사단 안에서 독점되어진다면 그건 해체되어야 할 조직이다. 교육운동본부로 인해서 일반 단우와 각 지역지부가 관심을 덜 갖게 된다해도 그렇다. 우리 흥사단교육운동본부가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교육희망네트워크에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