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운동단체이며 통일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흥사단의 일원으로서 참가하기 때문일까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민간차원의 남북공동응원단 ‘코리아응원단’에 참가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올림픽과 남북 공동응원 일원이 된다는 기쁨과 응원단원들이 다시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풀어내는 평화의 메신저가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찼다. 선수들의 경기모습,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모습, 남북이 함께 응원하는 모습, 응원단원들의 응원에너지가 방출되는 모습을 그리며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한다는 설렘이 가득하였다.
10일 쳔진공항에 도착하자마자 400명의 응원단이 짐도 풀지 않은 채 10대의 대형버스에 나눠 타고 6시간을 달려 이탈리아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르는 남쪽 남자축구 선수단 응원에 나섰다. 중국 응원단의 “이탈리아 짜요!”의 외침에 맞서 비록 분산하여 앉았으나 코리아응원단과 재중동포는 합심하여 “대~한~민국”을 한 목소리로 외쳤고, 3:0으로 진 순간에도 “괜찮아”를 외치며 남쪽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었다. 응원단인데 기운이 빠지면 안 된다며 내일은 더 잘할 것이라고 힘들지만 조금 더 목소리를 내어 응원하자고, 선수들에게 힘을 더 실어주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힘을 북돋았다.
이번 남북공동응원단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장거리 버스행진도 행진이었지만 시시때때로 바뀌는 표 값과 교통문제, 단체응원단 입장 제재가 코리아 응원단의 발목을 잡았다. 중국의 사회가 이렇구나 하면서 이해한다해도 ‘그래도 이건 심하다.’하는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원래 표 금액의 20배에 육박하는 암표 극성과 중국당국의 단체입장 제재로 인해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에 마련된 유도 경기장 왕기춘(73㎏급)과 올림픽 금메달 2관왕에 도전하는 북쪽 계순희(57㎏급)를 응원에는 100명밖에 입장할 수 없었고, 13일 여자 핸드볼 또한 중국식 올림픽의 여파로 입장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응원단은 좌절하지 않고 경기장은 못 들어가더라도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겠다는 단합된 의지로 현지 교민들과 함께 대형스크린을 통해 목소리를 높여 응원하였다.

응원단으로 참가한 4박 5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역시 12일 독일과 예선을 치른 북쪽 여자축구였다. 응원도구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던 응원단은 지혜를 발휘하여 경기장의 플라스틱 의자를 북 삼아 4박자에 맞춰 의자를 두드리며 북쪽 축구팀을 향해 “통~일~조국”과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고, 북쪽은 흰색바탕에 파란색으로 한반도가 그려진 티를 입은 코리아응원단에게 환호를 보내었다. 남쪽과 북쪽의 응원단 사이에는 250m의 거리가 있었지만 중국응원단과 독일응원단을 거쳐 북쪽 응원단까지 이어진 몇 차례의 파도타기는 경기장 모든 관중의 함성과 함께 남북공동응원이 진행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축구경기 후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장 밖에서는 코리아응원단의 풍물놀이가 시작되었다. 재중 북동포를 포함하여 외국인과 응원단이 사물놀이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기차놀이를 하며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통일조국”을 외쳤고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주며 한마음 한뜻으로 거리응원을 벌였다.
안타까웠던 순간과 감동적이었던 순간이 함께하였던 지난 5일간의 남북공동응원단 결성은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10년의 역사 이래 최초로,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경기장에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적이고도, 매우 상징적인 일이었다. 비록 지난 10.4선언 때 남북 당국이 베이징 올림픽 공동 응원단을 결성하기로 하여 양쪽에서 300명씩 모두 600명의 공동 응원단을 두 차례로 나눠 분단 이후 처음으로 경의선 철도를 통해 서울~신의주를 거쳐 베이징으로 가기로 합의하였던 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민간차원의 노력으로 이뤄내었다는 것은 도산 선생이 강조하셨던 약속 이행의 중요성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되어진 순간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남북공동응원단이 합심하여 남북쪽 선수를 응원할 수 있기를 꿈꾸며, 또한 멀지 않은 날 하나의 국기를 흔들며 응원하기를 기대해본다.
- 글 : 윤지나 (서울흥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