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평화·통일 사회적 대화 숙의 토론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6월 25일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옥스포드팔레스 호텔에서 ‘평화·통일 사회적 대화 숙의 토론회’라는 그 이름이 주는 무게 만큼이나 사뭇 진지하고 뜨거운 열 기가 가득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관련된 주제로 미주 한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날로 극으로 치닫고 있는 남남갈등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토론회가 마련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인 흥사단,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이 발족한 통일비전전국시민회의에서 이번 토론회를 주관하였다.
남가주에서 LA·OC(오렌지카운티) 흥사단, 민주평통 LA지회, 미주 범사련, 미서부종교평화협의회 등 이념과 성향이 다른 다양한 사회단체의 회원 100여 명의 패널들이 톤론회에 참가하였다. 숙의 토론회란 말 그대로 진지하게 들어보고 깊게 생각해보는 소통의 장이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정치권에 의해 그 한계와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숙의민주주의가 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의 숙의민주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지난 2017년 탈원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에서 보았듯이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인 주체로서 갈등의 골이 깊은 현안에 참여하여 학습과 토론으로 담아낸 결과는 민주주의의 가치인 절차와 합의라는 과정적 측면에 있어 높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번 사회적 대화가 숙의민주주의의 한 방안으로서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장 시킬 수 있는 이유이다.
그동안의 통일, 대북정책은 주로 정부주도로 진행되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져 지속적인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 관련 정책수립에 참여하자는 취지로 이념과 성향이 다른 101개의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연합하여 올해 4월 30일 ‘평화·통일 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 시민회의’를 발족하고, 한국 내 17개 광역시도와 미국, 일본 등에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시애틀에 이어 미주에서는 2번째로 ‘LA 평화·통일 사회적 대화 숙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미래상 – 한 체제로의 통합인가, 두 체제의 공존인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남북 간의 군사적 상황과 분리하여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하는가?’라는 2가지 주제로 진행되었다. 두 체제의 평화적 공존과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군사적 대치문제와 별개로 북한 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되어야 하고, 북한에 대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실용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한편 행사 추진배경과 형식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이념과 차이를 넘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와 합의를 이끌어내며 숙의 토론회의 의미와 전망을 밝게 했다. 특히 토론회의 진행요원으로 참가한 젊은 대학생들은 평상시에 무관심했던 한반도의 평화, 통일문제 그리고 숙의 토론회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토로하였다.
‘LA 평화·통일 사회적 대화 숙의 토론회’를 마치고, 한국에서부터 진행된 이번 숙의 토론회의 의미를 세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고 싶다. 첫째, 통일국민협약이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반도의 중요한 정책 결정에 일관성을 답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공론화된 의견이 반영된 정책은 정권이 바뀐다 하여 쉽게 뒤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국가의 중요 정책 결정에 있어 절차와 과정을 중요시하는 풍토를 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국가의 중요 정책들이 이념의 테두리에 둘러쳐진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급속으로 결정되어 실패한 사례를 수없이 경험해 보았다. 시민들이 참여하여 합의하고 공론화시키는 사회적 대화의 과정과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 숙의 토론회는 그 자체로 이념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깊게 생각해보는 자리다. 다름속에 같음이 있음을 함께 알아가면서 신뢰를 쌓아 화합해보자는 자리다. 세상의 가장 큰일은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하였고, 가장 어려운 일은 가장 쉬운 일에서 시작한다 하였다. 너와 내가 화합하여 만들어 내는 토론의 자리가 곧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 수 있는 작으면서 큰일이 될 것이다.
숙의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들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과정이고 내면의 성찰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나를 알게 된다고 했던가? 남의 눈에 티끌보다 나의 문제점을 먼저 생각하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화합,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첫걸음이 시작되지 않을까? 이번 사회적 대화를 통해 ‘나에게 한 옮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옮음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일갈하시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는 이유이다. 국내외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평화· 통일 사회적 대화 숙의 토론회’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라며, 깊이 있고 통찰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앞당겨지기를 바랄 뿐이다.
* 글 : 민상호(LA지부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