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뮤지컬 '도산', 그 감동의 의미
8월 10일 LA윌셔이벨 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도산'은 1,270석이 매진되었다. 당일에 표를 구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많은 관객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함성 그리고 감동의 기립박수가 함께한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지난 3월 3일 리버사이드에 위치한 로마린다대학 교회에서 리버사이드 지역 한인회의 주최로 치러진 첫 공연을 보고 느꼈던 감동, 그 감동의 의미를 재현하기 위해 '우리 흥사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단우 역할을 맡았던 한국말이 서툰 제임스 홍이라는 20대의 젊은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뮤지컬 '도산'을 통해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한인으로서 자긍심이 생겼고 흥사단의 모임에 참여 하고 싶다는 소회를 들려주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흥사단 미주위원부와 LA지부가 주최와 주관을 맡기로 결정하고,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연 그룹팀 '시선'과 함께 준비한 지난 4개월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뮤지컬의 재공연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00년의 역사와 함께해온 흥사단의 사명감 그리고 '거국가'를 노래하며, 모든 배우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신은 그들의 열정 때문이었다고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2시간 반이란 시간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자취와 사상을 모두 담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뮤지컬은 도산 선생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없었던 일반 시민들과 특히 미주의 젊은 세대들에게 청각과 시각으로 감동을 전하고, 더할 나위 없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주에서 뮤지컬을 보기 위해 찾아준 도산의 직계 후손들, 잊어버린 역사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 찾아준 젊은이들, 어린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한 가족, 일제 강점기를 몸소 겪어 내신 어르신들 등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깊은 감동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상 깊었던 뮤지컬 장면으로 제12장의 '거국가'와 13장 '흥사단 창립'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도산의 '거국가'에는 애국지사로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명감이 앞축 되어 담겨 있다. '거국가'는 1910년 4월 도산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 배후자로 옥고를 치른 후, 일제의 강도 높은 감시를 피해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며 만들어졌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 남겨진 동포들을 향한 애절함,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 미래를 기약하며 다가올 민족독립의 소망과 확신이 담겨 있다. 이 가사는 암울한 시대의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제13장에서는 망명길에 오른 도산이 유럽과 러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재입국하여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앞날을 짊어져 갈 젊은 지도자들을 키우기 위해 1913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단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도산이 흥사단의 4대 정신으로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나라의 이념적 기초를 세워, 흥사단과 젊은이들을 통해 어둡기만 한 조국의 현실 앞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민족독립운동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는 해설은 도산과 흥사단의 정신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연습무대에 오른 젊은 배우들이 '거국가' 장면에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이 노래에 익숙했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도산으로 빙의된 듯한 주인공이 부르는 '거국가'의 첫 구절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잠시 뜻을 얻었노라 가불대는 이시운이…
나 간다고 슬퍼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사랑하는 조국을 뒤로하고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던 도산의 애처러운 심정이 실린 이 가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100여년 전 만들어진 애국지사의 한 노래가 어찌 한 세기를 관통해 이 시대 후손들의 가슴을 적시는 노래가 되었는가. 5,000년의 역사를 흘러 우리 민족의 세포 하나하나에 박혀있던 슬픔의 전주곡이 장중한 진혼곡이 되고 눈물이 되어 이 시대 희망의 씨앗을 틔우는 거름이 되었으리라.
"지금 이별할 때에는 빈 주먹을 들고 가나,
이후 상봉할 때에는 기를 들고 올테이니,
눈물 흘린 이 이별이 기쁜 일이 되리로다."
도산은 '거국가'의 마지막 4절을 통해 조국을 떠나는 통한의 심정을 구국의 의지와 민족의 희망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산 안창호라는 한 인물의 삶은 우리 민족 고난의 역사이자 희망의 역사이다. 오늘날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고난 없는 희망은 없으며 고난에는 그 숨겨진 뜻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숨겨진 뜻과 의미는 무엇인가? 도산은 우리 민족이 품어내야 했던 고난의 역사를 희망이라는 열매로 재탄생시켰다. 이번 뮤지컬 '도산' 공연을 통해 감동과 함께 역사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숨겨진 뜻과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뮤지컬 '도산'의 재공연이 가능하도록 후원과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특히 모든 정성과 열정을 쏟아부은 무대 예술 그룹 '시선'의 연출 및 배우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뮤지컬 '도산'의 지속적인 공연을 위해 뜻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 글 : 민상호(LA지부 지부장, 뮤지컬'도산' 준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