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 상근자들과 함께 공동학습 과정으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다. 본부 상근자들은 기초적인 공감대를 갖고 활동하자는 취지로 매주 수요일 오후에 공동학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철학책을 같이 읽고 있으며 도산사상, 경제사와 NGO 활동에 대해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활동가를 청해서 그들의 경험을 듣기도 한다. 독서만 하면 재미없으니 다양하게 하자는 제안에 따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고 선정한 영화가 ‘화려한 휴가’다.
‘관람’이라는 고상하게 느껴지는 표현 대신에 ‘봤다’고 하는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5·18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언론에 많이 소개되고 지난주까지 620만 명이 관람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인 것으로 보이나 나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5·18에 관해서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독일기자가 촬영한 영상물을 보기도 했으며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었기에 영화가 그 정도로 진실(단순한 fact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감동을 포함한 것)을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학습을 안 할 수 없고 꼭 안 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기에 본 것이다.
불편했던 이유는 첫째, 이 영화는 5·18을 일일 멜로드라마로 만들었다.
실시간 25분짜리 일일 멜로드라마는 극적 긴장감 없이 에피소드를 적당히 배치하여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신파조의 눈물을 유도한다. 5·18이라는 드라마틱한 현재적 소재를 천착하지 않고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에피소드 나열로 끌고 감으로써 5·18의 의미를 가볍게 만들었다.
둘째, 사실을 왜곡했다. 시민군 지도부를 단순히 예비역 대령 하나로 설정하고 항쟁 주요 인물을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운전사와 우연히 탑승한 승객과 딸로 설정하여 한 가족을 항쟁의 중심으로 그렸다. 당시 시민군을 지휘하고 도청을 사수했던 항쟁지도부는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던 청년, 학생과 운전기사, 회사원, 자영업자 등 일반 민중이었다. 이것을 계급적 성격이 정반대인 공수부대출신 예비역 대령으로 바꿔서 보여준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픽션은 사실을 좀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과 창조력의 산물이다. 사실과 다른 모습을 사실처럼 보여주는 것을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셋째, 해방 기간의 의미와 구체적 상황을 그리지 못했다. 5월 22일부터 5월 26일까지 5일간 광주는 시민들의 자치공화국이었다. 억압으로 기능하는 정부와 경찰, 군대가 없어도 치안은 유지되었고 시민이 스스로 통치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871년 파리꼬뮌과 1894년 동학의 집강소 운영, 1927년 광동꼬뮌 등 역사는 이런 경험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광주는 짧은 기간이었고 구체적인 구조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인 살육과 폭력적 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여 일정기간 동안 스스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한 것은 권력의 주인이 누구여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것에 눈감고 있다.
27년 만에 5·18을 그린 영화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5·18을 모르는 세대와 5·18을 잊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드라마틱한 요소가 풍부하고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광주 5월’을 이렇게 밖에 못 그리나?
글 : 홍승구/흥사단 본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