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에게 잠시 빌린 지구
지난 연말, 뉴욕에 사는 아들로부터 기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여름이면 제가 할머니가 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생애 첫 손주, ‘뉴쁨’(태명, 뉴욕의 기쁨)이를 부를 때마다 기쁨이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일상에서도, 집안에서도 생기가 돋아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뉴욕의 거리만큼이나 무거운 불안이 몰려왔습니다. 다음 세대의 지구는 안전할까? 다음 세대는 존재만으로도 이렇듯 큰 기쁨을 안겨주는데 우리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이런 기쁨을 건네줄 수 있을지. 불안과 미안함, 죄책감은 저만의 문제일까요.
1814년 G.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더 많이 가지고, 더 편리한 세상을 꿈꾸며, 더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1887년 1월, 경복궁 향원정을 밝힌 전깃불이 방방곡곡 밤을 몰아내면서 한국인들의 가슴은 잘살아 보자는 열망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의 미래는 ‘찜통 지구’요,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빈국보다 못한 꼴찌 언저리에 닿아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는 급상승하고 있고, 이산화탄소 증가는 온실효과를 가져와 기후 위기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대기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금성은 온실효과로 평균기온이 470℃에 이를 정도로 뜨겁습니다.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지구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제 달리는 열차를 멈추어야 합니다.
한국의 사계절이 주는 경고
기후 위기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하면 할수록 지구는 더 뜨거워집니다. 코로나 방역 마스크에 갇혀온 지 삼 년,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봄나들이 가자고 노래 부르던 개나리는 이제 시도 때도 없이 피어납니다. 봄비가 촉촉한 창가에서 바라보는 연둣빛 풍경은 봄 가뭄으로 이어집니다. 방방곡곡 뿌연 미세먼지로 눈앞이 따갑습니다. 학자들은 금세기 내에 전체 생물 종의 50%가 멸종한다고 예측합니다.
여름이면 늘어나는 폭염 일수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살인적인 폭염의 증가로 노인과 저소득층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연 발화적인 산불의 발생과 규모가 커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한 모퉁이는 대형 산불과 함께 폭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바닷물 속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투발루나 몰디브는 먼 나라의 일일까요.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해수면 상승이 진행되고 있어서 어느 날 부산 해운대나 인천국제공항도 잠길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렸습니다.
황금빛 가을 들판은 안전한가요.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농작물 수확량이 10%씩 감소한다고 합니다. 기습적인 폭우와 가뭄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병충해는 농작물의 생육을 더 어렵게 합니다. 바다의 해양 온난화와 산성화는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2030년이면 온갖 해양 생물의 서식지인 산호초의 90%가 사멸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합니다. 제주 앞바다의 산호초 사멸은 지금도 급속하게 진행 중입니다.
겨울은 더욱 혹독합니다. 온난화는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자연이 아픈 만큼 사람도 이전보다 다양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의 끝없는 개발사업은 동식물들의 서식지를 빼앗은 지 오래입니다. 강제 이주당한 동물들이 사람과 병원체를 공유하게 되면서 코로나19는 수년째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과 식수 부족은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유엔에서는 ‘살기 위해’ 이주하는 기후난민이 2050년까지 최대 10억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날 때입니다.
사회가 만드는 기후위기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환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구성한 국제기구 IPCC(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는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1.5℃ 상승은 재앙의 마지노선, 2100년까지 지구 기온의 상승 폭을 1.5℃ 미만으로 제한하고, 이를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 상승하면 지구는 지구 스스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찜통 지구’가 되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지게 되고, 그 후 세상을 ‘지옥 같은 100년’이라고 예상합니다.
이미 지구 기온은 1.1℃ 상승했고, 우리에게 남은 양은 0.4℃입니다. ‘탄소시계’ 인터넷 사이트는 현재 남은 시간이 7년이라고 알려줍니다.
현재진행형인 기후 위기 속에서 탄소발자국의 첫발을 뗀 나의 일상을 돌아봅니다.
의식주 생활, 이동과 여행의 과소비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매년 800억 점의 의류가 생산되는데 20년 전보다 4배 늘어난 규모입니다. 의류 구매량은 늘었는데 이용 기간은 짧아졌습니다. 주거생활 에너지 사용도 많이 늘어났고, 구글 한 번 검색에 0.2g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페트병은 분당 100만 개, 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세계 1위이고,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2위 수준입니다. 플라스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전 세계가 고기를 덜 먹는 식단으로 전환할 경우, 2050년까지 예상되는 기후비용의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미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혜련 여사는 홀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간장 안 먹는 날, 고기 안 먹는 날 등을 정해서 식료품비를 절약해 독립운동에 자금을 보탰습니다.
오색(五色)은 눈을 어둡게 하고, 오음(五音)은 귀를 먹게 하며, 오미(五味)는 혀를 상하게 할 뿐이라는 노자의 경고는 2500년 전의 일입니다. 풍요와 편리함을 부추기는 대중 소비문화가 지구를 숨차게 합니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개발, 성장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더욱이 과학기술이 모든 난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는 위험한 낙관주의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과학만능주의자들은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무한욕망의 신기술이 인류의 행복에 정말 필요한 걸까요.
실천하는 시민을 간절히 바라는 초록별 지구
깨어있는 신민(新民)들이 뭉치면 ‘모두가 함께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룰 수 있습니다.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과정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없도록 흥사단이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욕망의 기차’를 멈출지, 속도 조절 및 고통의 배분은 어떻게 할지, 지구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삶을 바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50년 전, 지구의 수용 능력 한계를 경고한 책(인류의 곤경에 관한 로마클럽 프로젝트 보고서) ‘성장의 한계’ 저자들은 그 해결책으로 ‘꿈꾸기, 네트워크 형성하기, 진실 말하기, 배우기, 사랑하기’를 제안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해답지가 있습니다. 나라 잃고 타국으로 떠돌던 시기에도 ‘독립된 조국’을 이야기하고,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식민지의 어둠 속에서도 민주공화정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민족·정치·경제·교육의 4평등의 공동번영을 꿈꾸었습니다. 병원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도 송태산장의 나무들을 잘 가꾸어달라고 부탁하셨던 도산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애기애타를 남겨주셨습니다.
작은 몸짓이 이웃을 움직이고, 이웃들이 모여서 기업을 움직이고, 정치를 움직일 것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빗자루’ 모임을 만들어서 산과 들에서, 강과 바다에서 청소도 하고, 이웃들에게 빙그레 미소로 다가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좋을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도란방’도 만들고, 광장에서, 소셜미디어(SNS)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고래부대’도 만들어 봅시다. 녹색 생활 실천으로 만든 ‘초록 잎새’ 기금으로 ‘애기애타 일꾼’을 기르는 학교를 만들어서 마을 자치현장에 파견해야 합니다. YKA등산모임을 계절마다 한 번씩 ‘탄소 제로의 날’로 만들면 어떨까요. 각자의 주거지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으로 걸어가는 날. 삼삼오오 모인 단우들이 정의돈수를 나누고 각자의 애기애타 일기를 서로서로 나눈다면 일석이조. 탄소 제로 실천에 깊이 있는 대화는 덤으로 가져갑니다.
소사과욕(少私寡欲), 사사로움은 줄이고 욕망을 덜어내면 애기애타의 삶이 보입니다. “이제 그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소리 지르고 행동하면 사회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진정한 애기애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입니다. ‘찜통 지구’를 남겨 줄 것인가, ‘초록별’ 지구를 남겨 줄 것인가, 갈림길에서 외치는 10대 소녀의 외침에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글: 조현주(흥사단 이사)